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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 Bill Gates ],

빌 게이츠, [ Bill Gates ],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Bill Gates | William Henry Gates III) 기업인출생1955년 10월 28일, 미국소속마이크로소프트(기술고문)가족배우자 멜린다 게이츠수상2013년 제65회 밤비 미디어 어워드 밀레니엄 밤비상경력2014.02~ 마이크로소프트 기술고문관련정보네이버[지식백과] - 마이크로 소프트 창업자 / 빌 게이츠사이트공식홈페이지, 트위터, 페이스북,

 

1993.4.11 빌 게이츠가 멜린다 프렌치에게 약혼반지를 선물하다,

 

정보기술 기업의 대명사 마이크로소프트. 2008 회계연도 매출액 617억2천만 달러, 순이익 177억6천만 달러로 매출액 규모와 순이익에서 애플과 구글을 크게 앞선다. 빌 게이츠는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 정보기술 시대를 선도해 온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로, 이제는 일선에서 은퇴해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5년간 비밀 연애한 게이츠와 멜린다 가운데 커피 값을 낸 쪽은 거의 언제나 멜린다,

2000년 한 연회장에 이브닝 드레스 차림으로 나온 멜린다와 빌 게이츠 부부

빌 게이츠는 멜린다 프렌치에게 함께 비행기를 타고 시애틀로 가자고 했다. 그러나 비행기는 네브래스카의 오마하 공항에 착륙했다. 1993년 4월 11일 부활절 일요일이었다. 어리둥절해 하는 멜린다. 그러나 게이츠의 설명을 들은 멜린다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비행기에서 내린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워렌 버핏이었다. 버핏의 차에 함께 타고 그들이 향한 곳은 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 소유 보석상 보셰임이었다.

 

버핏이 유쾌하게 말했다. “난 1951년에 아내에게 줄 약혼반지를 살 때 전 재산의 6%를 썼다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 그 일요일을 크게 즐기지는 못했지.”

 

당시 37살이던 빌 게이츠의 전 재산의 6%라면 5억 달러 정도다. 물론 게이츠는 재산의 6%를 약혼반지 사는 데 쓰지는 않았다. 이들은 1994년 1월 1일 하와이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첫 만남은 1987년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마이크로소프트의 언론홍보행사에서 사장과 직원 사이로 이루어졌다. 88년부터 비밀 연애를 시작했고, 커피값을 내는 쪽은 빈 지갑 들고 다니기 일쑤인 게이츠가 아니라 멜린다였다. 멜린다는 엔지니어 아버지와 가정주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1964년) 듀크대학에서 컴퓨터와 경제학을 공부하고 듀크대학 푸쿠아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결혼식 전날 밤 게이츠의 어머니는 며느리에게 편지를 써서 “부부가 되어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할 것, 그리고 막대한 부에 따르는 고유한 책임에 충실할 것” 등을 조언했다. 당시 게이츠의 어머니는 유방암 말기 상태였다. 25년 나이 차이를 뛰어넘은 버핏과 게이츠의 우정의 시작도 어머니가 게이츠에게 참석을 권유한 기업인 모임에서였다. 이 우정은 버핏이 재산의 대부분을 빌앤멜린다게이츠 재단에 기증키로 하는 것으로까지 이어졌다.

 

'빌 게이츠' 곧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세계 굴지의 기업이며 미국에서개인 재산이 '최고'라고 하는 그는 사실 그 단체의 유명한 회원이며 심지어는 그의 회사에서 생산하는 프로그램들 중에 일부는 '사탄의 영'에 의해서 생산된 것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서 자세히 알 수 있다.

 

아직도 한국의 '빌 게이츠'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는 유명한'사탄주의자'이다. 그의 '저작'인 인터넷을 위한 '동적 객체의 규약'인 'active x'는 사실은 '활동적인 사탄'이라는 뜻임을 그대들은 과연 알고 있었는지? 컴퓨터를 프로그래밍 하는 사람이면 잘 아는 'ole(동적 객체 포함)'의 'iunknown' api 함수 의 의미를 알고 있는지?

 

'interface unknown(power)! ''unknown(미지의)'라는 것은 흔히 'x'라는 글자로 상징되어진다. 유감스럽게도 최근의 일본의 저패니메이션 (japanimation)에서는 이것을 '용(dragon)'이라는 말에 사용하고 있다. 그것의 '제목'이기도 하고 말이다.

 

일루미나테의 창시자인 계몽주의자 '아담 웨이샤우프트(adam weishaupt)'의 이름의 본래의 의미는'사탄을 알게된 최초의 사람(the first man to know the superiors)'라는 뜻임을 그대는 알고 있었는가? 물론 여기서 그들이 말하는 '초월자(the superiors)'는 '사탄'이다! 그 의미 하나하나에 벌써 냄새가 난다. 우리는 이미 그 냄새를 맡을 수 없을 정도로 무뎌져 있다. 그러므로 다시 일어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바래야(반사해야) 한다! 

 

  • 미국의 기업인
  • 1955년 출생
  • 워싱턴 주 출신 인물
  • 마이크로소프트
  • 프로그래머
  • 유튜버/B
  • 영국계 미국인
  • 미국의 가톨릭 신자
  • 타임지 올해의 인물

Bill Gates
KBE

한국어:  빌게이츠

본명

윌리엄 헨리 게이츠 3세
(William Henry Gates III)

국적

미국 

출생

1955년 10월 28일 (64세)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

학력

레이크사이드 고등학교 (졸업) (1969-1973년)
하버드 대학교 (응용수학과 / 중퇴) (1973-1974년)
하버드 대학교 (명예 법학박사) (2007년)

소속

마이크로소프트 기술 고문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 공동회장
테라파워 회장

직업

소프트웨어 개발자, 기업인, 자선가, 유튜버

재산

$105.6billion, 약 123조원

종교

가톨릭

신장

178cm

부모

윌리엄 헨리 게이츠 주니어(부) (1925 - )
메리 맥스웰 게이츠(모) (1929 - 1994)

배우자

멀린다 게이츠

자녀

슬하 1남 2녀

서명

 

미국의 기업인, 기부 재단 이사장, 프로그래머이며 전 세계 PC 운영체제 시장의 무려 76.52%를 점유하고 있는 Microsoft Windows의 개발사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주. 하버드 대학교를 중퇴하고도 MS-DOS Windows로 성공 신화를 써내려 갔으며, 80~90년대에는 IT 업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일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1995년부터 2017년까지 거의 대부분 세계 갑부 순위 1위를 차지했던 인물이다. 마르지 않는 샘물을 소유한 덕분에 아주 오랫동안 세계 제1의 부호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2017년에는 아마존 제프 베조스 회장에게 자리를 내주어 세계 갑부 1위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그는 현직에 있을 때만 해도 부의 제국, 어둠의 군주, 세계를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 등 두려움의 대상으로 묘사되곤 했지만 은퇴 후 파격적인 자선사업으로 그 간 모든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꾸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압도적으로 큰 자선재단을 운영하고 있으며, 자녀들에게는 본인 재산의 0.1% 미만만을 물려준다는 선언도 화제가 되었다. 또한 전 세계 부호들에게 기부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며, 설득하는 캠페인은 전 세계에 크게 화제가 되었다. 이제는 기부를 실천하는 부호의 상징으로 존경받고 있다.

 

소년 게이츠, 반 편성 프로그램 부탁 받고 여학생이 자기 반 대다수가 되게 만들어'

빌 게이츠의 가정환경은 유복했다. 아버지는 변호사, 어머니는 금융기업과 비영리 단체의 이사였다. 부모는 게이츠가 변호사가 되기를 바랐다. 초등학교 시절 게이츠는 못 말리는 독서광이었다. 10살이 되기 전에 백과사전을 전체를 독파한 그는 집 근처 공립도서관에서 열린 독서경진대회에서 아동부 1등과 전체 1등을 차지했다. 4~5장 분량이면 되는 리포트 숙제를 20~30페이지가 넘는 사실상의 논문으로 작성할 정도로 의욕도 넘쳤다. “오늘날의 나를 만든 것은 동네 도서관이다. 멀티미디어 시스템이 정보 전달 과정에서 영상과 음향을 사용하지만, 문자 텍스트는 여전히 세부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최선의 방식이다. 나는 평일에는 최소한 매일 밤 1시간, 주말에는 3-4시간의 독서 시간을 가지려 노력한다. 이런 독서가 나의 안목을 넓혀준다.”

스물 두 살의 빌 게이츠가 과속으로 경찰에 체포됐을 당시 촬영한 '머그 샷',

13살 때 게이츠는 졸업생의 4분의 1 이상이 아이비리그에 진학하는 시애틀의 사립학교 레이크사이드스쿨에 진학했다. 게이츠가 8학년 때 학교 ‘어머니회’는 제너럴일렉트릭(GE)의 컴퓨터와 연결되는 ASR-33 텔레타이프 터미널을 학교에 들여놓았다. 1960년대 말에 공유 터미널을 통해 컴퓨팅을 할 수 있는 학교는 그곳이 사실상 유일했을 듯. 게이츠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푹 빠져들었다. (그의 첫 프로그램은 컴퓨터를 상대로 할 수 있는 간단한 게임이었다.) 게이츠는 이미 아마추어가 아니었다. 학교의 반 편성 프로그램을 부탁 받아 만들기도 했고(여학생이 자기 반의 대다수를 차지하도록 만들었다.), 친구들과 함께 인포메이션 사이언스사 급여 관리 프로그램을 만들어주고 컴퓨터 사용 시간과 프로그램 로열티를 받아냈다.

 

컴퓨터광 학생들의 잦은 사용으로 ‘어머니 클럽’의 기부금이 고갈되어 시스템 연결이 여의치 않게 되자(GE의 컴퓨터와 연결하여 사용하는 시간에 따라 요금을 내야 했다.) 게이츠와 친구들은(이 가운데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로 상급생인 폴 앨런이 있었다) 컴퓨터 센터 코퍼레이션(CCC)의 오퍼레이션 버그를 찾아주고 시스템 무료사용권을 얻어냈다. 고교생 게이츠는 워싱턴주립대에 진학해 있던 폴 앨런과 함께 인텔 8008 프로세서에 기반을 둔 교통량데이터 분석 프로그램을 만들어 돈을 벌기도 했으니, 창업은 그의 운명이었다고 할까?.

 

애플이 윈도우즈 비슷한 방식 먼저 내놨지만 실패, MS는 윈도우즈 3.1부터 날개 달아'

1975년 4월 4일 19살이던 게이츠는 하버드대를 중퇴하고 21살의 앨런과 함께 뉴멕시코 주 앨버커키에서 자본금 1500달러를 갖고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했다. (하버드대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포커를 해서 모은 돈이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이름은 마이크로컴퓨터와 소프트웨어의 앞부분을 합친 것. 창업 초기에는 하이픈으로 연결한 이름(Micro-Soft) 이었으며, 1975년 11월 29일 게이츠가 앨런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이픈 없는 형태로(Microsoft) 처음 쓰였고, 그 형태로 1976년 11월 26일 회사를 등록했다. (1979년 앨버커키에서 워싱턴 주 벨뷰로 회사를 옮겼고 나중에 워싱턴 주 레드먼드로 옮겨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컴퓨터에 ‘창’(windows)을 단 것은 1983년 11월 10일이었다. 그 이전에 이미 애플사가 세계 최초로 GUI(Graphic User Interface) 방식의 운영체제를 내놓았지만 약간의 관심을 끌고 마케팅에서 실패했다. 비지코프사도 마이크로소프트보다 먼저 GUI 방식의 운영체제를 내놓았지만 실용적이지 못했다. 1985년에는 윈도우즈와 비슷한 GEM(Graphics Environment Manager)을 디지털 리서치사가 출시했지만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워낙 적었다. 이후 여러 업체에서 나름의 운영체제를 내놓았고 마이크로소프트도 지속적으로 운영체제를 개선했지만 확실한 시장 지배력을 지니지는 못했다.

 

드디어 1990년 5월,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즈3.0을 내놓았다. 프로그램 관리자와 아이콘의 구실이 강화되고 파일 관리자를 새로 선보였다. 윈도우즈용 프로그램이 대거 등장하면서 PC 운영체제 시장의 확실한 강자로 등극했다. IBM-PC가 나오고 얼마 뒤 마이크로소프트가 16비트 운영체제 MS-DOS 1.0을 내놓은 1981년 이후 약 10년만의 일이었다. 1992년에는 윈도우즈3.1이 나왔다. 3.0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새로운 기능을 추가함으로써, 이후 대부분의 PC가 윈도우즈3.1을 탑재하게 되었다. 이제 승승장구가 시작될 참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 본사 정문에 새겨진 로고.


마이크로 소프트는 마이크로 컴퓨터와 소프트 웨어의 합성어다.

1993년 5월 윈도우즈NT, 1994년 8월 윈도우즈95가 속속 출시됐다. 윈도우즈95는 PC 운영체제의 명실상부한 대표주자가 되었다. 1998년 윈도우즈98, 1999년 윈도우즈98 SE, 2000년 윈도우즈ME, 2000년 윈도우즈2000, 2001년 윈도우즈XP. 마이크로소프트 제국의 확장사다. 아키텍쳐(컴퓨터 시스템의 근간이 되는 운영 구조)를 개방한 IBM과 사실상 합작한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영역 확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IBM이 새로운 PC를 개발하면서 운영체제 개선을 시도하고 확장성을 증가시킬 때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내놓으며 운영체제의 표준으로 자리 잡으며 시장지배력을 높였다.PC와 소프트웨어의 시장 가능성에 대한 남보다 앞선 전망, 우수 인력을 적기에 스카우트하여 후대하는 인재 중심 경영, 빌 게이츠 자신을 비롯한 직원 모두의 끊임없는 열정과 도전의식, 철저하게 시장 지배력을 높이는 방향의 경영 등이 마이크로소프트 제국의 확장 비결이었다.

 

"제가 물러나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기회가 될 겁니다. "

2008년 6월 27일, 빌 게이츠는 33년 간 이끌어오던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났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은퇴계획을 밝힌 터였지만, 마이크로소프트 제국의 한 시대가 종언을 고하는 사건이었다. 이날 오전 9시 마이크로소프트 본사 콘퍼런스룸에서 게이츠는 부인 및 세 자녀들과 함께 800여 명의 임직원 앞에 섰다. 그날도 차림새는 넥타이 없는 셔츠. 스티브 발머가 빌 게이츠의 이름을 부르자 게이츠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MS MS가 하는 위대한 일들을 생각하지 않은 날은 내 인생에서 단 하루도 없을 것입니다.” 은퇴에 즈음한 임직원들과의 대화에서 게이츠는 실수와 경쟁과 도전에 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큰 변화가 일어나는데도 이를 놓치는 경우가 있지요. 탁월한 사람들을 투입하지 않을 경우입니다. 이게 가장 위험합니다. 그런 일이 여러 번 있었지만 비교적 괜찮았어요.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는 횟수를 줄여야겠지요. 저는 사람들이 MS를 깎아 내리는 걸 좋아합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실수를 했고 실수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서 배웠고 우리의 많은 업적은 바로 그 결과입니다. 중요한 것은 규모 확대가 아니라 더 민첩해지는 것입니다. 회사 규모가 곧 두 배가 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여러분도 알다시피 내 예측은 여러 번 틀린 적이 있지요. 저의 부재는 다른 사람들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제 물러나야 하며, 뭔가 새로운 일이 나타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여전히 시장점유율이 절대적으로 높은 마이크로소프트지만 애플의 맥OS와 리눅스의 도전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윈도 비스타는 판매량이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웹브라우저에서도 파이어폭스의 도전이 만만치 않고, 구글도 새로운 웹브라우저로 도전장을 냈다. 오피스 제품에서도 구글이 도전장을 냈으며 온라인 기반의 소프트웨어 개념 및 제품의 확산과 함께 패키지 소프트웨어 제품의 앞날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인터넷 검색과 광고 시장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성과는 별로다. 사실상의 시장 독점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나 법적 소송도 빈발하는 편이다. 빌 게이츠 은퇴 이후 남겨진 이러한 상황을 마이크로소프트는 과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재산 1천억 달러 넘은 게이츠 "세 자녀에게 1천만 달러씩 주고, 나머지는 기부"

2000년 뉴델리를 방문한 빌 게이츠가 한 아이에게 구강 위생을 위한 백신을 주고 있다.

빌 게이츠는 세계 최대 갑부라는 수식어로 자주 회자된다. 그는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 리스트에서 1995년부터 2007년까지 연속으로, 그리고 2009년에 1위에 올랐다. 워싱턴 주 메디나에 있는 게이츠의 저택은 대지와 건물을 합해 1억2천5백만 달러, 저택에 대한 연 재산세는 100만 달러에 달한다. 게이츠는 경매를 통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친필 컬렉션을 3천80만 달러에 사들이기도 했다. 1999년에 게이츠의 재산은 1천억 달러를 넘어섰고, 2000년 이후 닷컴 버블 붕괴와 막대한 기부 및 재단 출연으로 재산이 줄기 시작했다. 게이츠는 세계 최대 갑부라는 식의 주목을 받는 게 싫다고 밝힌 바 있다.

 

게이츠의 제2의 인생은 돈을 쓰는 것, 정확히 말하면 2000년에 설립한 빌앤멜린다 게이츠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을 통해 기부 사업을 펼치는 것이다. 공공 도서관 고속통신망 개선 7백만 달러, 대학생 장학금 5억 달러, 중국의 결핵 퇴치 3천300만 달러, 소아마비 퇴치 3억5500만 달러, 빈곤층을 위한 모바일 금융서비스 사업 1억2500만 달러, 결핵 백신 개발 연구 8,300만 달러, 말라리아 백신 개발 연구 1억7천만 달러, 어린이 치료약품 연구비 970만 달러, 빈민 지역 교육환경 개선 18억5000만 달러, 저소득층 장학 사업 16억 달러 등 세계 최대의 기부자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 수위를 다투던 버핏과 게이츠는 이제 ‘세계에서 기부를 가장 많이 하는 인물’ 수위를 놓고 다투는 중이다. 버핏은 2008년까지 406억5500만 달러를 기부했고, 게이츠 부부는 360억 달러를 기부했다. 2009년부터는 매년 35억 달러 정도를 기부할 계획이다. (버핏은 빌앤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출연 신탁자이자 이사이기도 하다.) 빌앤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버핏, 빌 게이츠, 멜린다 게이츠 세 사람 가운데 마지막 사람이 죽는 시점부터 50년 이내에 재단 활동을 종료할 계획이다. 이유는 ‘최대한 빨리, 가능한 많은 일을 하기 위해서“다. 게이츠 부부는 세 자녀에게 1천만 달러를 물려주고 나머지는 모두 기부할 계획임을 밝혔다.

필자가 추천하는 덧붙여 읽으면 좋은 책

  •  

    빌게이츠 @ 생각의 속도 빌 게이츠 저안진환 역청림출판1999.05.31.

    빌게이츠 @ 생각의 속도: 빌 게이츠 저안진환 역청림출판1999.05.31.상세보기

<빌 게이츠 @ 생각의 속도> 는10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정보기술이 주로 비즈니스 영역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생각하고자 할 때 여전히 읽어볼만 하다. 단, 인간 빌 게이츠에 관한 이야기를 이 책에서 기대하지는 말 것.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기보다 징검다리 식으로 읽는 게 좋을 듯.

  •  

    빌 게이츠 NEXT PAGE 메리 조 폴리 저양승민 역엘도라도2009.02.20/
    빌 게이츠 NEXT PAGE메리 조 폴리 저양승민 역엘도라도2009.02.20.상세보기

<빌 게이츠, Next Page> 는 ‘빌 게이츠’로 대표되는 마이크로소프트의기업문화와 성과를 되짚어보고, 빌 게이츠 이후의 미래 전략, 핵심 인물, 제품, 비즈니스모델 등을 전망한다.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얼마나 절대적인 존재였는지, 이 책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빌 게이츠> 는 100쪽 못 미치는 분량으로 빌 게이츠의 삶의 궤적을 정리했다. 잔혹한 자본가와 창조적 자본주의자로 게이츠의 얼굴을 대비시키면서 그 공과를 두루 거론하기는 하지만, 대체로 긍정적으로 보는 듯하다.


그의 자세한 인생사를 알고 싶다면 살림지식총서- 빌 게이츠를 읽어 보자.

 

경력

실제 그는 사회에 모난 것 없이 무난하게 지나가는 모범생 스타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젊은 시절 하버드 대학교를 중퇴하고 맨손으로 컴퓨터 사업에 뛰어들 정도로 야심가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 한창 고생하던 시절에는 "그냥 의사나 할까"라고 생각도 했었다고 한다.

근데 아래 서술한 것이나 실제 행보들을 보면 은근히 반항아 기질이 있다. 대학생 때 음주운전을 저질러 경찰에 붙잡혔다. 컴퓨터 제조사들에게 경쟁사 제품을 쓰면 윈도우를 납품하지 않겠다고 협박한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이래선 반드시 법적으로 문제가 되기 때문에, 복돌이 대책 겸 해서 "OS 없는 PC의 출시를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신들이 무슨 프로그램을 만들건 그건 당신들 자유지만 MS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라고 한다거나, OS 내에 경쟁사 제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하는 코드를 몰래 집어넣는 일을 하기도 했다. 사실 이 정도는 웬만한 대기업들도 많이 하긴 하지만, 어쨌거나 이 사람이 정직하고 깨끗하게 부를 축적했다고 하는 말은 맞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아니 오히려 한때의 별명이 '실리콘 밸리의 악마 (Demon of Silicon valley)' 였을 정도로 악랄한 장사수완을 자랑했다.

2000년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스티브 발머에게 넘겨주고 2선으로 물러났다. 이후 회장직과 더불어 최고 소프트웨어 아키텍트(Chief Software Architect) 직책을 신설하여 맡았다. 2006년 최고소프트웨어 아키텍트(CSA) 직책을 레이 오지에게 넘겨주면서 사실상 은퇴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2008년 6월 27일부로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직에서 은퇴했다. 이것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그래도 이사회 의장직은 그대로 유지한다고 한다. 즉 회장 연봉은 안 받지만 앞으로도 마이크로소프트 덕분에 왕창 벌 거라는 이야기다.

2007년까지 600억 달러의 개인재산을 가지고 있는 세계 최고의 부자였다. 허나 최근 주식 가치 등의 변화로 빌 게이츠의 '세계 최고의 부자' 타이틀이 위협받았다. 멕시코의 통신재벌인 카를로스 슬림에게 '세계 최고의 부자' 타이틀을 넘겨주고 자신은 '미국 최고의 부자'로 남는 듯했다.

그러나 2013년 5월을 기점으로 블룸버그에서 집계하는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서 카를로스 슬림을 제치고 다시 1위로 등극했다. 이후 다시 Forbes에서 2위로 떨어졌다가 2015년엔 다시 1위로 등극하면서 계속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는 중. 2017년 11월 현재는 아마존닷컴의 제프 베조스가 세계 최고 갑부로 등극했다. 어쨌든 순위가 계속 바뀌어도 빌 게이츠라는 이름은 갑부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다.

 

생애

그의 리즈시절 사진 (2004년 모습)/ 2013년 만 58세의 모습


중산층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성장했다. 아버지는 시애틀 최고 법률 회사를 운영하던 저명한 변호사였으며 어머니는 미국의 은행인 퍼스트 인터스테이트 뱅크시스템과 비영리 단체 유나이티드 웨이의 이사회 임원이었다.

신동 기질도 타고나서, 교회 목사님이 박람회에 데려가는 조건으로 내건 성경의 산상수훈(마태복음 5장에서 7장에 해당하는 내용이다)을 완벽하게 외운다든지 수학적으로 재능을 보여 일찍이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참고로 그의 IQ는 160으로 굉장히 높다. 또 엄청난 독서광이었다고 한다. 식탁에서도 책을 놓지 않아 부모가 늘 나무랐다고. 타고난 천재성으로 학교에선 늘 우등생이었고 경영과 프로그래밍을 금방 익혔다고 한다.

레이크사이드 고등학교에 다닐때부터 컴퓨터에 두각을 나타냈는데, 언젠가는 폴 앨런과 함께 학교단말기에 연결되어 있던 중앙컴퓨터를 해킹하여, 학교가 지고있던 빚을 회계장부에서 지워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기도 했다고. 참고로 폴 앨런은 게이츠의 친구이자, 마이크로소프트를 차릴 때의 동업자이기도 하다.

어떻게 위기를 넘기고 나서 하버드 대학교에 들어가서 컴퓨터과학과의 전신인 응용수학(applied math)을 전공하면서 수학적 재능이 더욱 개화, 마음이 맞는 친구들을 모아 악동 짓을 하거나 프로그램 개발을 하거나 했다고 한다. 이 시기에 알고리즘 논문을 하나 써서 이산수학 학술지에 실었다. 내용은 팬케이크 소팅이라는 문제에 대한 알고리즘을 제시한 것으로, 더 좋은 알고리즘은 30년 뒤에야 나왔다.

흔히 IT분야에 젊은 사업가가 나타나면 제2의 빌 게이츠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 중에 게이츠처럼 학문적인 성취를 이룬 사례는 거의 없다. 대학원에 진학해도 게이츠의 논문만큼 중요한 논문을 못 쓰고 박사를 받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박사를 받을 정도면 다른 연구 업적을 쌓았겠지만.

학술지에 논문을 실은 이후 더 배울 것이 없다면서 하버드 대학을 중퇴했다. 나중에는 하버드 대학에서 명예 졸업증을 주긴 했다. 사람들은 그가 패기있게 자퇴한 것으로 아는데 사실 그는 당시 사업이 결국에 안 풀리면 학교로 돌아올 생각으로 휴학을 했다고 한다.

언젠가 한 회사가 게이츠의 소문을 듣고 회사 컴퓨터를 맡겼는데, 암호표도 주지 않곤 암호 걸린 회사기밀문서를 읽으라고 시키자 그 자리에서 문서의 암호를 깨버려 위험 인물로 낙인 찍혀 강제 퇴직당했다. 게이츠는 그 퇴직금으로 앨런과 함께 회사, 즉 마이크로소프트를 차렸다. 초기 마이크로소프트는 알테어용 베이직 인터프리터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다.

그러다 몇 년 뒤, IBM 사에서 처음으로 PC를 출시할 때였다. 마이크로소프트 사는 IBM에 PC용 운영체제를 공급하기로 계약한다. 그래서 시애틀 컴퓨터의 Q-DOS를 개발자랑 같이 사와서 이름도 MS-DOS로 바꾼 뒤 팔아 떼돈을 벌었다.

어쨌거나 그가 IBM과 맺은 계약은 컴퓨터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계약이라고 불린다. 결국 IBM은 마소에게 돈만 퍼준 꼴이 되고 만다. 이후 윈도우 시리즈를 통해 완전히 OS시장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 IBM과의 IBM-PC 운영체제 계약도 매우 운이 따랐는데, IBM에서 최초로 계약을 하려 한 곳은 MS였지만, 당시 MS는 자체 운영체제가 없었다. 그래서 게이츠는 당시 많이 쓰이던 CP/M을 만들던 게리 킬달의 디지털 리서치를 소개해 주었다. 하지만 그 쪽은 왠지 IBM과의 계약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 협상은 결렬되었다.

 

게이츠는 다시 한 번 양 쪽을 중재해 보았지만, 그 때도 디지털 리서치는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고 계약은 결렬되었다. 그래서 PC 출시가 늦어질까 걱정한 IBM과 PC가 안 나와서 베이식이 안 팔릴까 걱정한 MS의 계약이 이루어졌다. 이때 게리 킬달이 바로 정신을 차렸으면 MS가 지금처럼 성공하지는 못 했을 것이다. MS-DOS를 살펴본 킬달은 MS-DOS가 자사의 CP/M-86과 외형이나 기술적으로나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IBM을 위협하여 자사의 운영체제도 공식 운영체제로 만들었다. 그래서 IBM PC에는 운영체제가 포함되지 않은 채로 판매되었고, 운영체제는 시장에서 자유롭게 선택하여 구입할 수 있었다.

 

디지털 리서치는 CP/M-86의 기술적 우수성을 과신한 나머지 무려 240달러라는 엄청난 가격에 팔았다. 반면 MS-DOS는 약 40달러에 판매되었다. 결국 CP/M-86은 곧 망하고 말았다. 나중에는 정신을 차려서 DR-DOS도 내놓기도 했지만 시장은 이미 MS에게 완전히 넘어간 이후였다. 그리고 이미 윈도우로 넘어가는 중이기도 했다. 결국 디지털 리서치는 서서히 망하게 되었고, 이들이 PC 초기에 보여준 일련의 바보짓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단 킬달은 자서전에서 아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위의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빌 게이츠를 아주 싫어했다고 킬달의 빌게이츠에 대한 평가는 "He is divisive. He is manipulative. He is a user. He has taken much from me and the industry."

원래 세계 최초의 GUI 탑재 컴퓨터는 1981년에 탄생한 제록스 스타 (Xerox Star)이다. 여기서의 제록스는 그 복사기 제조업체로 유명한 제록스 맞다. PARC에서는 태블릿 PC,내부 네트워크를 이용한 이메일 등 시대를 수십년 앞질러가는 기술들이 있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제록스 스타의 GUI 시스템에 크나큰 감명을 받았고 사내에서 인정받지 못하던 PARC팀을 스카웃해 1984년 세계 최초의 상업용 GUI방식 PC '애플 리사(Lisa)'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윈도우 1.0 디스켓과 함께. 1985년


은퇴
특히 잡스 퇴출 이후의 애플을 상대로 재정적으로 압박하면서 실리콘밸리의 악마로서 무자비한 사업일화를 많이 만들어냈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에게 GUI 특허 사용권을 받아 윈도우 1.0을 1985년에 탄생시켰고 완성도와는 별개로 GUI방식 컴퓨팅을 전세계로 확장시키는데 성공한다. 빌 게이츠가 1~2년 안에 쓸모없어질 (애플2의) 애플소프트 계약 갱신을 교묘하게 사용하여 1985년 11월에 매킨토시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영구적인 라이센스를 존 스컬리로부터 얻어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확히는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 소프트 개발을 위해 GUI에 대한 사용권을 받았는데, 해당 라이센스의 만료일이 기입되지 않은 점을 이용하여 마이크로소프트의 OS를 만드는게 가져다 쓴것. 애플 측은 해당 라이센스가 1회용임을 주장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만료일이 기입되지 않았으므로 영구적인 라이센스를 넘겨받은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때문에,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에게 1988년 저작권 소송을 걸었지만, 판사는 애플이 '부주의하게' 마이크로소프트에게 1985년에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대한 권한을 영구적으로 넘긴 것으로 판결내렸다.

애플은 제록스로부터 GUI와 GUI를 위한 기술들에 대한 사용권을 구매했으며, 자신들이 직접 개발한 GUI 요소에 대한 특허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을 토대로 마이크로소프트에게 GUI 저작권 침해에 대한 소송을 걸자, 빌 게이츠는 제록스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변호사들이 제록스가 가진 GUI 원천 특허를 발견하게 한다(그전까지 제록스의 경영자들은 자신들이 GUI 원천 특허를 가지고 있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결국 애플 고유의 GUI 특허들 또한 제록스의 원천 GUI 특허 위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인정되어 애플의 GUI 특허를 무효화 시켜버린 일이 있다.

이외에도 맥 베이직을 묻어버린 일이 있다. 애플의 돈 데먼이 개발중이던 맥 베이직이 마이크소프트에서 제작중인 베이직 인터프리터보다 뛰어나다는 걸 알자, 애플소프트 계약을 빌미로 맥 베이직을 포기하도록 요구하고선, 맥 베이직을 1달러에 사서는 무기한 보류시킨 다음 소스코드와 복사본을 전량 폐기시켜버린 일이있다.

위에서 알 수 있듯 프로그래머로서의 재능도 탁월하지만 무엇보다도 사업가로서의 재능 또한 매우 뛰어났던 것이 성공의 원인으로 꼽히는 인물. 사실 MS의 경쟁자들은 왠지 삽질을 저질러서 망한 경우가 많지만…. 실수를 덜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원래 전쟁은 잘 싸우는 쪽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덜 하는 쪽이 이기게 마련이다.

사실 상기의 업적들을 뛰어넘는 빌 게이츠의 가장 큰 업적은 소프트웨어(= 손에 잡히지 않는 순수 디지털 콘텐츠)를 그 자체만으로 판매될 수 있도록 한 것 혹은 그런 패러다임을 만든 것이다. 빌 게이츠가 자신의 소프트웨어를 돈 받고 팔겠다고 나서기 전까지, 모든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와 결합된 형태 혹은 종합적인 컴퓨팅 서비스의 일부로서만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었다. 즉 저작권 대국 미국에서도 그 이전까지는 무형의 코드 다발 자체로는 팔고 살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그러다가 빌 게이츠가 소프트웨어에 대한 배타적 재산권을 주장하고 이의 판매에 대한 비즈니스 모델을 확립한 덕분에 현재 전세계의 무수한 상용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는 애플과 비교해봐도 극명하게 차이나는 부분. 애플은 바로 지금까지도 자사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결합한 상태로 판매한다. 이는 전 시대의 IBM이 그랬고 그 외의 유닉스 기반 기업들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의 (어떤 의미에선 구세대의)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구세대적 비즈니스 모델을 넘어서서 소프트웨어 즉 무형의 디지털 콘텐츠를 그 자체로 독립적인 상품으로 판매하는 새로운 모델을 세운 사람이 바로 빌 게이츠인 것.


2008년 CES 마지막 기조연설을 했다. 기조연설 중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 출근 마지막날이라는 비디오를 틀어줘,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 비디오는 당시 미국에서 방영 중인 인기 시트콤 오피스와 클린턴 대통령 임기 종료 파티에서 상영된 코미디 영상을 패러디한 것이다. 클린턴 항목에 해당 영상의 링크가 있으니 비교해서 보면 좋다. 특히 등장인물들이 인터뷰로 뒷담화 까는게 똑같다.

내용은 대략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 퇴사 후 할 일을 찾는것인데, 그 중 빌 게이츠가 차기 대통령 민주당 후보로 유력했던 2명 중 한 명이었던 힐러리 로댐 클린턴 상원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부통령감으로 좋은사람이 있는데, 제가 해먹으면 안될까요?" 힐러리 왈 "당신이 정치에 어울릴지 모르겠군요"라고 하는 대목이 있다. 그 다음 장면에는 버락 오바마 앨 고어도 나온다.

그 밖에도 U2 보노 Jay-Z, 조지 클루니, 스티븐 스필버그, 존 스튜어트 등 유명인들이 기꺼이 출연하여 여러모로 대박이다. 유머도 있고, 센스도 있는 사람. 특히 본인의 샌님스러운 면모를 철저히 반영하여 사람을 웃긴다.

 건즈 앤 로지스 & 前 벨벳 리볼버의 기타리스트 슬래시의 기타 연주와 함께 무대에서 퇴장했다,

 

기부와 선행
그의 기부 규모에 대한 빠르고 쉬운 이해.

저 자막이 잘못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면 지금 바로 계산기로 계산해보자.

전성기 악착같이 돈을 벌어 실리콘밸리의 악마(Demon of Silicon valley)라는 표현까지 들었던 그가 은퇴 후 보여준 행보를 보면 마치 기부를 위해 돈을 악착같이 벌었던게 아닌가 싶을 정도... 아프리카나 저개발국가를 위한 그의 노력을 보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매번 노벨상의 유력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과거에는 '독과점' 같은 다소 좋지 않은 이미지가 강했으나, 시간이 지날 수록 안티가 상당수 떨어져나갔다.

유행병이나 질병에 대한 관심도 생겼는지, 향후 인류는 지구온난화뿐만 아니라 언젠가 닥쳐올지 모를 대규모 유행병에도 대비해야 할것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는데, 코로나바이러스-19가 터지면서 그의 발언이 재평가되고 있다. 빌&멜린다 재단을 통해서 백신연구에 관한 투자에 관심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코로나-19가 진행중인 상황에도 이에 대한 향후 전망을 피력하기도 하였다. 

 

한때 독과점으로 인한 비난을 희석하기 위해 기부를 한다고 알려졌으나, 실재로는 아내의 영향이 컸다. 멜린다 게이츠는 처녀시절부터 자선활동을 자주하는 편이라 결혼 후 빌 게이츠가 영향을 받기 시작했으며, 실재로 대부분의 기부금을 아내를 통하여 기부하였다. 자기 재산의 90%는 죽기 전에 기부하겠다고 선언, 워런 버핏도 그것에 동참했다. 부인과 자신의 이름을 딴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해 에이즈 치료제 개발 등에 돈을 기부하고 있다.

 

기부하는 금액부터가 보통 군상들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사실상 아프리카에서 에이즈를 막고 있는 방파제는 멀린다 게이츠 재단이 거의 전담하고 있다. 만약에, 이 재단이 아프리카를 뜬다면 대책이 없다. 아프리카의 수호자. 또 기부금 운용이 투명해서 신뢰할 만한 기부 재단으로 꼽힌다. 버핏도 이 점을 보고 기부를 했을 정도. 여러모로 귀감이 될 만한 일이다.

 

자기가 죽은 뒤에는 현재 3명 있는 자식 제니퍼, 로리, 피비에게 유산의 0.02%만 물려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재산의 0.02%도 1000만$(한화로 약 110억원)에 달한다. 2011년 6월경 자식들에게 주는 재산이 현 재산의 0.018%로 줄었지만 금액은 동일.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2007년 이후 그의 기부액은 280억 달러에 달하고, 블룸버그에서 억만장자 조사를 했을 때 그의 재산이 2012년 기준으로 70억 달러가 늘었다라고. 즉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은 마를 리 없는 샘인 셈. 게다가 지금 있는 자선재단의 현재액도 362억 달러이므로, 이 정도면 아프리카 질병-개발 관련 자선사업에 충분히 남는 정도다. 그리고 이것은 빌이 직접 투자한 회사들에서 나온 주식 차액에서 나온 돈으로 기부하는 것이라고 한다.

 

게이츠는 테라파워라는 벤처기업의 주요 투자자인데, 이 회사는 작고 안전하고 깨끗한 고속증식로를 개발하고 있다. 일단 개발목적은 증식로의 좋은 목적을 사용하기 위해서 라고 적어 두고는 있다. 현재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DOE도 찔러보고, 한국 원자력 연구원도 찔러보고, 도시바도 찔러보는 중. 이 회사에서 개발하는 고속증식로는 일단 값싸면서 연료보충 없이 50년을 목표로 삼고 있다. 여튼 연료가 타는 방식이 이동파 같아서 Traveling Wave Reactor라고 불린다. 회사 대주주로 있는것도 아프리카에 값싸고 효율적인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서다.

 

사장 시절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위로하는 편지를 써서 보냈고 잡스는 그 편지를 곁에 두고 시간날 때마다 보았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는 사이가 안 좋을 것이라는 인식이 많지만, 실제로는 선의의 경쟁자 비슷한 관계였다고 한다. 단, 초창기 매킨토시의 GUI 시스템을 Windows가 라이센스를 받아 사용했는데, 사용 허가 버전을 명시하지 않아 생긴 법정 다툼에서 원래 GUI 특허가 애플의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내 애플의 GUI 특허를 무력화시킨 이후에는 서로 죽일 듯이 증오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잡스가 NeXT사를 설립해 첫 NeXT 데스크탑을 출시했을 때도 게이츠는 공개적으로 그 하드웨어를 욕하고 MS가 NeXT를 위해 소프트웨어를 공급할 일은 없을 거라고 단언했다. 게이츠의 이런 태도 때문에 NeXT가 몰락한 건 아니었지만 당시 잡스의 감정을 긁어놓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물론 그 이후에는 다시 원만한 경쟁자로 돌아왔지만.

 

모기로 고생하는 저개발국가에 레이저를 이용해 초당 100마리 이상의 모기를 죽이는 시스템을 만드는 회사를 지원하였다. 실제로 TED에 시연 영상이 올라와 있다.

 

너무 비싸서 일반인은 보지도 못하는 다빈치의 노트, 파인만의 강의를 자기가 샀다. 그리고서는 주석을 달아서 일반에 거의 공짜로 공개했다.

 

골프를 치러 갔는데, 어느 대학생이 캐디로 할당이 되었었다. 빌은 그 캐디의 신상을 샅샅이 캐물어 보며 관심을 보였지만, 정작 팁은 안 주고 그냥 갔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의 대학 학자금 융자를 갚아 줘 버렸다고 한다.

 

에이즈예방을 위해 성관계를 할 때 쾌락을 느끼는 만족감이 큰 콘돔을 개발하는 연구비에 거금을 내놓았다. 쓸데없이 고퀄리티냐며 웃을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임신이 목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콘돔을 못 챙겨서'를 능가하는 미사용 이유가 '느낌이 안 좋아서'다. 그게 해결되면 에이즈 전파 경로 중 하나인 성적 전달이 억제되기에 에이즈 퇴치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에이즈가 아니라도 남자들이 콘돔을 기피하는 대표적인 이유가 앞서 말했듯이 느낌이 안좋아서 인데 여자 입장에서는 임신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려야 하기에 쾌락을 느끼는 만족감이 큰 콘돔은 여러가지로 이득이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하수 정화 장치를 이용하여 정화한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지구촌 물부족 문제의 원인 중 하나가 이런 물에 대한 나쁜 인식임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차세대 화장실 개발에 투자를 하는 중인데, 이 화장실은 현대의 수세식 화장실에 대한 대안으로 개발 중이다. 수세식 화장실은 배설물을 하수로 보내기 위하여 대량의 물을 낭비하게 되는데, 이는 가난하거나 물이 부족한 나라에는 적합하지 않다. 차세대 화장실은 이렇게 낭비되는 물을 줄이고, 대신 배설물은 '버리는 것'이 아닌 퇴비나 에너지로 재활용하는 방안을 연구중이라고 한다.

 

잠시 복귀와 완전 은퇴,

미국 현지 시간으로 2014년 2월 4일 사티아 나델라 신임 최고경영자의 취임을 발표하는 동시에 33년간 재직해 오던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나 '창립자 겸 기술 고문'이라는 새 직책을 맡게 된다고 한다. 이는 은퇴 5년 만에 현역으로 복귀하는 것.

2020년 3월 마이크로소프트의 이사직과 투자회사의 직책 까지 모두 내려놓으면서, 완전히 은퇴하고 교육 및 자선사업에 전념하겠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사와 인연을 완전히 끊는 것은 아니며 회사가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돕겠다고 했으며, 현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 역시 기술 지도부와 빌 게이츠는 지속적으로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이사로서 기본적인 영향력까지 모두 내려놓고 기술 지원만 지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타 정보

 

머그샷. 1977년 12월 13일
교통법규 위반으로 머그샷. 1977년에 면허 없이 과속으로 포르쉐를 몰다가 체포되어서 기록사진이 남았다. 이 에피소드는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경쟁을 주제로 한 실리콘 밸리의 해적들에도 나온다.

 

자동차를 굉장히 좋아하는 듯하다. 포르쉐의 광팬이며 특히 포르쉐 959를 상당히 좋아하는 듯. 유명한 이야기로 포르쉐 959 미국 배기가스 기준을 통과시키지 못해 정식 인증이 나오지 않자, 뒷마당에 수영장을 엎고 전용 서킷을 지으려고 했다가 아내의 극렬한 반대로 포기하기도 했었다. 얼마나 극렬했냐하면, 이혼도 불사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젊은 시절엔 일부로 늦게 출발하여, 재시간에 도착 할 수 있게 과속하는것을 즐겼다고 한다. 덕분에 회의에 많이 늦었으며, 멀린다 게이츠와 사귄 계기도 자신만큼 회의에 늦게 온 멀린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라고 한다,

 

같은 년도에 태어난 스티브 잡스와 완벽하게 대비되는 라이벌이다. 빌 게이츠는 부유하고, 엘리트 교육을 받았으며, 가톨릭인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스티브 잡스의 (양)부모는 부유하지 않고, 고등 교육을 받은 적 없으며, 카톨릭 신부가 되려고 하였지만 경영자의 길을 걸었다. 빌 게이츠는 다양한 하드웨어에 호환가능한 소프트웨어를 만들며, 라이센스를 여러 제조사들에게 판매하면서 주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상품을 만들었다. 스티브 잡스는 엔드투엔드를 고집하며 소프트웨어의 라이센스를 다른 제조사에게 넘기지 않았으며 기업이 아닌 최종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상품을 만들었다.

 

전공한 학문이 문/이과로 다른 만큼 경영도 상이했는데, 개발자 출신의 게이츠와 달리 잡스는 아이디어나 경영쪽을 맡았으며, 후에 게이츠가 경영으로 완전히 전환한 뒤에도 추상적으로 비전을 제시하는 스타일의 잡스와 달리 직접 소스코드와 함수를 보면서 개발자들을 관리했다. 또 다른 비교 대상으로 오픈소스 계열의 아이돌 리누스 토르발스가 있다. 다만 토발즈는 빌 게이츠는 단순히 경영자일 뿐이라 자신과 비교할 수 없다고 깐다. 위에 빌 게이츠 경력을 게이츠도 개발자로서 경력은 상당하기 때문에 억울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토발즈 입장에서 보면 자신은 90년대 업계에 등장해서 지금까지도 개발자 업무를 지속하고 있는데, 게이츠는 토발즈가 업계에 등장하는 딱 그시기 부터 개발자를 그만두고 경영자로 완전히 전환했기 때문에 토발즈 입장에서는 게이츠를 그렇게 평가 할 수 밖에 없기도 하다. 예를 들자면 토발즈 입장에선 게이츠는 수학(개발업무)이 힘들다고 이과에서 문과로 전과한 사람인격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 사이에 한창 소송을 할 무렵인 1997년에 법정 합의 결과로 애플 주식을 많이 사긴 했는데, 의결권은 없어서 대주주라고 하기엔 무리. 게다가 2001년에 지분을 거의 팔아서 예전도 지금도 대주주 같은 것은 전혀 아니다. 사실 빌 게이츠가 그깟 애플 주식 열배 뛰었다고 아쉬워했을지는 의문이다. 애플 주식을 사는 것으로 합의해 애플을 살렸고, 대신 그것으로 MS가 반독점법으로 박살날 위기를 면했으니, 고작 현 애플 주식이 문제는 아닐 것이다.

 

애플이 폭풍성장을 하는 게 달갑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자식들이 아이폰 같은 애플 제품을 원하면 어떻게 할 꺼냐"는 질문에 우리 마이크로소프트사도 같은 물건이 있다고 대답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의 윈도우 폰은 아이폰에 비할 바가 못되었다.

 

오픈 소스를 신나게 까대면서, 사유 소프트웨어의 시대를 만든 주역이다. 뭐 프로그래머로서 정당한 대가를 받고자 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이분 덕에 저렴했던 유닉스도 겁나 비싸지기 시작하면서, 지금 같은 폐쇄적인 운영체제가 되었다. 그에 빡친 리처드 스톨먼 GNU 재단을 만들었다. 빌게이츠의 노력 덕분에 오픈소스가 상당히 줄어들었지만, 리처드 스톨먼, 그리고 리눅스 커널 최초 배포자 리누스 토발즈 덕분에 오픈 소스는 살아남았다.

 

인생에서의 가장 큰 실수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받았을 때, 구글 안드로이드 OS를 출시할 기회를 줘버린 것이라고 답했다. 정확히는 스마트폰 OS 시장은 철저한 승자독식의 세계이기 때문에 애플이 이미 한 축을 점유한 상태에서 오직 하나의 회사만이 애플의 반대편에 온전히 설 수 있었고, 본인의 최대 실수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데 실패하게 내버려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MS가 그 자리를 차지했더라면 MS는 유일한 선두주자가 되었을 거라고 이야기 했다. 당시 PDA 같은 모바일 업계 1위는 윈도우 CE 였으나 안드로이드의 등장 이후 점유율이 곤두박질처서 현재는 안드로이드는 커녕 IOS나 기타 대기업들이 만드는 커스텀 리눅스 OS 점유율도 따라잡지 못하고 있으며 야심차게 내놓은 윈도우 폰 OS는 성공을 가정하기에는 가장 중요한 기간 동안에 벌여놨던 치명적 실수들이 너무나 많았다.

 

1995년 후반을 기점으로  셰어웨어는 마케팅에만 수억 달러를 쏟아 부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 95보다 더 많은 컴퓨터에 설치되어 있었으며, 이러한 유명세는 빌 게이츠로 하여금 이드 소프트웨어의 인수까지 고려하게끔 하였다. 비록 이는 실현되지 않았으나, 그 대신 은 윈도우 95를 게임 플랫폼으로서 홍보하는 데 널리 사용되었다. 윈도우 95의 홍보영상 중에는 둠을 배경으로 빌 게이츠가 직접 등장하여 좀비맨과 임프를 샷건으로 날려버리는 영상이 있다.

 

이 때문에 게임산업에 대해 관심이 높았으며, 엑스박스 시리즈에도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초대 엑스박스의 런칭 행사에서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은 물론, 엑스박스 360의 출시 이전에는 타임지의 커버를 장식함과 동시에 장문의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으며, 이후 헤일로 3의 발매 당시 '예술로서의 비디오 게임이 세운 중요한 이정표'라고 찬사의 코멘트를 날리기도 했다. 엑스박스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애초에 엑스박스의 시작 자체가 플레이스테이션에 거실을 점령당하지 않을까 생각한 빌 게이츠의 위기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니 당연한 일일 듯. 한 인터뷰에 따르면 궁극적으로 엑스박스를 단순한 게임기를 넘어 윈도우즈와 연결되는 거실의 미디어 허브로 자리잡게 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2004년의 인터뷰에 의하면 만약 야마우치 히로시만 찬성한다면 닌텐도를 바로 인수할 계획이었다고. 위의 행적들과는 별개로 2014년의 레딧 질의응답에 의하면 본인은 열성적인 게이머가 아니라고 하며, 게임 중에서는 가족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키넥트 스포츠를 가장 많이 플레이했다고 한다.

 

빌 게이츠가 1995년 본인의 저서 '미래로 가는 길'에서 21세기의 생활에 대해서 예언했는데, 영화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볼 수 있다던가(넷플릭스), TV 프로그램을 보고 싶은 때에 다시 볼 수 있게 되고(VOD), 디지털 화폐가 들어있는 PC지갑(비트코인) 등을 예언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 소름 끼치게 높은 적중률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한 예측들 중에서는 틀린 듯 틀리지 않은 예측도 존재했는데, 예를 들어 그는 아이팟을 통한 애플의 성공가도는 길지 않을 것이다고 예측한 바 있다. 이유는 핸드폰이 곧 아이팟의 위치를 빼앗아버릴 것이고 애플은 늘 기술을 선도해왔지만 다른 경쟁자에게 자리를 빼앗겨버린 전례가 있기 때문이라고. 다른 예로는 2005년 당시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다음 세대에서 소니가 무엇을 내놓을지,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내놓을지 주목하고 있다. 닌텐도는 지금 시점에서 틈새 시장에 가깝다.'고 말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실제 아이팟은 핸드폰에 자리를 내주었지만, 그 핸드폰 만든 회사는 사실... 비슷하게 닌텐도의 차세대 게임기는 틈새 시장을 노려 만들었지만 그 틈새를 노린 전략 덕분에 거대한 성공을 이루어냈다.

 

워렌 버핏의 영향을 받았는지 1995년에 'Cascade Investment'란 투자회사를 설립했다. IT의 대가인 그는 투자에 대해서는 버핏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지 농기계 회사, 철도회사, 카펫회사, 코카콜라-멕시코, 자동차 소매, 조선소, 제약사, 호텔, 광산, 발전소, 제철, 쓰레기 처리 회사, 멕시코 언론사 같은 따분한 업종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일반인들은 각종 기부 및 선행들과 더불어 특유의 온화해보이는 외모를 가진 그의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사실 90년대까지 즉 마이크로소프트를 한창 키우던 20대 ~ 30대 시절에는 상당히 악독한 보스였고 이런 이미지로 유명 했다. 사원들의 차 번호를 외우고 주말에 회사에 나와서는 주차장을 체크해서 누가 주말에도 나와서 일하나 보는 진상짓을 하기도 하고, 미팅 중에 사원들의 높낯이를 안가리고 대놓고 소리 지르고 욕 하는게 일상이었다고 한다. 한때 엑셀 개발자였던 조엘 스폴스키의 일화에는 빌 게이츠가 참석한 회의에서 엑셀의 날짜 함수에 관해 제대로 대답을 하고 회의를 끝내니, 회의 참석자들이 빌에게서 F 워드가 4번밖에 안 나온 신기록을 달성한 날이라며 빌이 나이가 들어서(이 때가 빌이 36살 때다.) 물러진 것 같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의 악랄한 돈 벌이 행위는 동업자 폴 앨런의 증언에서도 나온다. 폴 앨런이 림프종으로 몸이 아파 회사를 나오지 못하게 되자 스티브 발머와 쑥덕거리며, 폴 앨런의 지분을 빼올려고 뒷작업을 하다가 걸려서 화가 난 폴 앨런이 퇴사하고 자서전에 돈 밖에 모르는 냉혈한이라고 비난하기도 하였다. 한마디로 개 처럼 벌고 정승처럼 배푸는 스타일,

 

정치 성향은 민주당 쪽으로 워렌 버핏과 함께 부자 감세와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며, 심지어 자기 같은 부자들은 세금을 더 내야한다고 발언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 2013년 1월 2일부로 그가 워렌 버핏과 같이 주장한 대로, 재정 절벽 방지를 위한 부자 증세안이 상-하원에 동시 통과되었다. 은퇴 영상에는 아예 민주당쪽 대선 후보들이 나온다. 그가 지분을 가지고 있는 MSNBC는 미국에서도 유명한 친 민주당 성향의 언론사이기도 하다.

 

빌 게이츠는 11세 시절이였던 1966년에 부모와 싸우기 시작했다. 방 정리나 저녁 식사 시간 지키기는 물론 연필 깨물기 금지라는 어머니의 요구는 불화의 근원이 돼 말다툼으로 번졌던 것이다.

 

빌 게이츠의 아버지의 자서전에 따르면, 12세 시절이였던 1967년 어느 날, 저녁 식사 도중 빌 게이츠가 어머니에게 대들자 아버지가 반성을 시키기 위해 컵에 있는 찬물을 빌 게이츠의 얼굴에 힘껏 뿌렸는데, 이때 빌 게이츠가 주눅들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커녕 "샤워를 시켜줘서 고맙네요."라며 빈정거렸다고 한다. 결국 빌 게이츠의 아버지는 정신적인 충격을 받고 심리상담가에게 데려갔는데, 그 심리상담가는 독특한 성격을 존중해주라는 충고를 했다. 결국 이 충고를 받아들인 빌 게이츠의 아버지는 사립학교 레이크사이드 스쿨이라는 학교에 보낸 것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한다.<출처: 1대100 134회 후반전 6단계>

 

하버드 대학에 재학할 당시, 들어야 하는 필수 과목은 등록만 하고 출석을 안 하고 다른 과목 수업을 청강한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하버드 대학 수학과 신입생들이 약 80명이 있었고 그중에서도 1등은 딱 1명일테고 자신은 그 1명이 아니란 것을 직감하고 아예 안 가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수학과보다 응용수학과 학생들이 더 재밌는 교양과목을 많이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바로 응용수학과로 전공을 바꿨다고 한다.

 

자퇴할 때 그의 부모님은 사업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1~2년 뒤에 복학해서 졸업하겠거니 하고 넘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어차피 1년만 더 있으면 졸업가능했기 때문에 말리지도 않았던 것 같다.

 

아내 멀린다 게이츠는 결혼 이전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선임 프로그래머 중 하나였다. 비서였다고 흔히 잘못 알고 있는데, 이 사람은 한때 Microsoft Publisher 프로그램 개발 책임자기도 했다. 누가 세계 최강 프로그래머 중 하나 아니랄까봐, 프러포즈 방법이 대박이었던 걸로 유명하다. 당시 선임 프로그래머였던 멀린다에게 "이 게임 재미있다는데 한번 해봐요"라면서 게임을 줬는데, 나름대로 재미도 있고 자신의 취향에도 맞았기 때문에 게임에 몰입하여 클리어했다. 그런데 클리어 화면에 "결혼해줘요. -빌"이라 떴었다나 뭐라나. 실제 여비서와 일화도 있지만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빌 게이츠는 30대가 될때 까지 잘 씻지도 않고 옷도 평범하게 입는데다가 상당히 동안이라 사장실에 왠 10대 소년이 들어온줄 알고 여비서가 나가라고 소리첬지만 빌게이츠가 회사 오너도 못알아 보냐고 쌍욕을 퍼부운 적이 있다. 결혼식에 몰려드는 취재인파를 피하기 위해 호텔 하나를 통째로 빌려버리기까지 한다.

 

빌 게이츠는 결혼 전에는 전형적인 사업밖에 모르는 비즈니스맨이었고 지금의 기부천사로 바뀌게 된 건 아내인 멀린다 게이츠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빌 본인으로서도 잘한 결혼이라고 볼 수 있다. 빌 게이츠가 마누라의 등쌀에 못 이겨 만든 것이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이다.

 

스피드광인 성격답게 승부욕도 강하다. 초능력을 가지게 된다면 경쟁자를 제거하는 능력은 절대 선택하지 않겠다고 한다. 너무 재미없어진다고,,,

 

어릴 때부터 퍼즐 등의 게임을 좋아했으며, 1995년에 전세계를 충격에 몰아넣은 PC 게임 『미스트』의 열렬한 팬인 것도 유명한 사실. 그의 큰딸은 제니퍼 『비바 피냐타』를 즐겨하지만 1시간 이상 못하게 하는 것도 유명하다. (2011년 기준 12살로 자식을 늦게 얻은 편이다.) 소문엔 그의 AV 기기들은 모두 도금처리하여 화이트 노이즈가 없다는 말도 있다.

 

1976년 베이식 인터프리터를 마구잡이로 복제해서 돌려쓰던 복돌이들을 겨냥해서 쓴 '취미가들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이라는 편지가 유명하다. '님들이 계속 불법복제하면 우리 같이 소프트웨어 만드는 사람은 다 거지가 될 거고 그럼 좋은 소프트웨어도 못 나올 거에요.'라는 내용으로, 저작권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번쯤 생각했을만한 울분을 시원하게 터트려줘 많은 사람이 찬양하나 반대로 자유 소프트웨어 진영에서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마이클 샌델이, 빌 게이츠는 하루 16시간을 일했다고 쳐도 초당 140불을 벌었기 때문에, 길거리에 100불 지폐가 떨어져 있어도 허리 굽히느라 멈춰서는 시간이 아까워서 줍지 않고 지나갈 것이라는 농담을 한 적이 있다. 이 후 어느 연설회장에서 질문 시간에 누가 정말 그럴 거냐고 물어 본 적이 있는데, 빌이 우물쭈물 하자옆에 있던 워런 버핏이, "빌은 모르겠지만, 나는 빌보다 가난하기 때문에 줍겠다"라고 답해 청중을 웃긴 적이 있다. 세월이 흘러 2014년에 복귀하고 나서 다시 한번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이번에는 줍겠다고 하였다.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살때 줄을 서는 등 소탈한 모습이 동네사람들에게 종종 찍히기도 한다.

 

부자인 만큼 실 생활용품 물가에 대해 무지한 편이다. 1달러 짜리 인스턴트 쌀밥 하나를 5달러로 예상했는데, 사람들이 야유하자 자기는 이걸 5달러에 사겠다고 너스래를 떨기도 했다. 하지만 게이츠 집에 피자를 배달했던 사람의 말에 의하면, 의외로 은 딱 20% 정도만 줬었다고 한다.

 

미국에서의 예의라고 하는 15% 보다는 많지만, 이것으로 그의 씀씀이를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크다. 애초에 부자라고 팁을 디립다 퍼줘야 한다는 시각이 더 편파적인 것. 이래서 언제나 프리메이슨이나 백신 등과 엮여서 음모론의 주인공이 되는 비운의 인물이기도 하다. 빌&멜린다 재단만해도 닭전염성 기관지염의 이 시국 전후에 특허를 보유했다는 이유로 빌 게이츠가 오히려 질병을 통한 계획적 인구감소 음모를 진행하는 일원이라고 음모론자들이 까대기도 하였으며, 심지어 무료 배포 백신에 마이크로소프트사 칩이 내장되어 있다는 소문을 퍼트리기도 했다. 왼손잡이다.

 

빌 게이츠의 족보를 보나 종교를 보나 유대인이 아닌데 미국 경제지에도 종종 유대인이라고 나온다. 빌 게이츠의 아버지는 독일-영국계 미국인 핏줄이 약간 섞인 전형적인 미국인이고, 어머니는 스코틀랜드-아일랜드계 미국인이며, 빌 게이츠의 가족은 가톨릭 집안이었으므로 유대인과는 상관이 없다.

 

현재는 가톨릭 신자이다. 기사 아무래도 엄격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멜린다의 영향으로 보인다. 결혼 전에는 불가지론적인 발언을 심심찮게 했었다. 결혼 후에도 신의 존재를 믿는 독실한 신자라기 보다는 ‘믿어서 나쁠게 있나’정도의 마인드인 듯 하다. 위 기사에 나온 인터뷰에서도 리처드 도킨스 같은 사람의 의견에도 일정 부분 동의할 정도다. 멘트들을 살펴보면 신을 믿는다기 보다는 이웃에 대한 사랑과 같은 가톨릭의 사상과 긍정적인 사회적 역할에 감화된 것으로 보인다. 결혼 후 자선사업에 많이 참여하는 것도 가톨릭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스팸메일이나 악성코드에 대한 증오심이 남다르다. 요즘 윈도우에 내장되는 악성코드 제거 프로그램 초기작은 그가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늘어나는 스팸메일과 악성코드에 견디다 못하여 직접 나섰고, 은근히 효과가 있자 아예 개발부서를 두고 만들었다고 한다. 하루에 오는 스팸메일이 수십만 통에 달하다 보니, 아예 스팸메일을 처리하는 부서가 있었다고.

 

2010년경에는 기어코 한국에 위인전까지 출시되었다. 물론 유아용 위인전은 그 전에도 셀 수 없이 많이 나왔지만.

 

173cm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172cm인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같이 찍은 사진을 보면 신장은 175cm 정도로 추정된다. 젊었을 때 쓴 이력서 기준으로 5피트 10인치, 177.8cm이다. 유명한 그 악수 비교 사진과 달리 어느 쪽이든 한 손으로 편한 자세로 악수를 했다.

 

2003년 4월 4일 오전 9시 38분 MBC를 시작으로 YTN, SBS등의 방송 채널에서 빌 게이츠 사망 오보를 내는 사고가 있었다.

 

2007년에 가전박람회 CES(International Consumer Electronics Show)의 기조 연설에서 한국의 가전제품 기업 모뉴엘을 극찬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런 소식은 한국 언론사들의 뉴스에만 적혀있고 다른 국가의 뉴스에서는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그나마 있는 영문 기사들도 사이트 주소를 보면 알 수 있는 한국 언론사 사이트의 영문판에 불과하다) 루머인듯 하다. 관련기사 무엇보다 모뉴엘은 시원하게 망했다. 항목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모뉴엘이 CES에서 온갖 상을 받아온것도 사실인 만큼 사실일 가능성도 있긴 하다. 그 영향력 때문에 간혹 나폴레옹이나 아돌프 히틀러에 합성되기도 한다.

 

정수리에 탈모가 진행되고 있어서 휑하다. 다만 예순 가까이 되어서 시작된 터라 미련은 없을 듯. 그런데 '말라리아 백신에 비해 별로 중요하지 않은 탈모 치료에는 돈이 몰리고 있다'라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물론 이는 탈모 환자들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말라리아같이 인체에 치명적인 질환의 예방 및 치료에는 정작 제대로 투자를 하지 않고 있는 현실의 모순을 꼬집기 위한 표현이다. 레딧에서 유저들에게 라이브로 다양한 질문을 받고 직접 답하는 AmA(Ask me Anything)를 자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9년 현재까지 7번씩이나 했다!

 

2009년경에 어느 미국 매체가 계산해본 결과, 당시 빌 게이츠의 전 재산을 모조리 1달러 지폐로 바꾸면 지구에서 달까지 약 153바퀴를 돌 정도의 양이 나온다고 추측했다. 컨트리 가수 존 덴버와 외모가 언뜻보면 흡사해서 아주 적긴하지만 기타치는 드립이 있다.

 

AOL과 넷스케이프는 한창 잘나가던 시절에 빌 게이츠에게서 "너네 자꾸 그렇게 신경 건드리면 회사 확 사버린다" 라는 발언을 들은 적 있다. 학창 시절 학교 컴퓨터를 해킹하여 예쁜 여학생만 자기 반에 넣었다고 한다. 2019년 9월 20일 넷플릭스에서 만든 빌 게이츠 다큐멘터리 <Inside Bill's Brain: Decoding Bill Gates>가 공개된다. 아래는 그 예고편

 

리히텐슈타인 의회에서 낙태를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자 공작 한스 아담 2세의 장남 섭정 알로이스 공자가 보수 귀족인 그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수 없었는지 "나라를 빌 게이츠에게 팔고 국명도 마이크로소프트로 바꾼 후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본가로 돌아가겠다"고 위협했다. 리히텐슈타인은 공작가의 가산으로 유지되는 나라라 결국 의회는 알로이스 공자에게 굴복, 법안을 거부했다.

 

어록

저는 "아빠, 나는 언젠간 학교에 돌아갈 것이고 졸업장을 받을 거라고 항상 말했었잖아요."라는 이 말을 하기 위해 30년 이상을 기다려왔습니다. 잠시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이 일주일에 몇 시간 혹은 한 달에 몇 달러를 어딘가 기부하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고 또한 당신이 그 시간이나 돈이 어딘가에서 생명을 구하고 삶의 질을 극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곳에 사용되기 원한다면 그곳은 어디일까요? 아직 저는 낙관론자입니다. 불평등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잡성을 무너뜨리는 새로운 방법들은 이제 나온 것들이며 그 방법들은 우리가 우리의 관심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앞으로의 미래는 과거와는 다를 것입니다. - 2007년 6월 7일, 자신이 중퇴했던 하버드 대학에서 명예졸업장을 받은 자리에서의 졸업축사 내용 중에 몇 마디.

 

소프트웨어 개발비용은 비쌉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돈을 주지 않는다면, 뛰어난 소프트웨어는 결코 개발되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 결정하시죠. 소프트웨어를 쓰실 겁니까, 아닙니까(돈을 주시렵니까)? -1980년에 데니스 배터리키츠와의 인터뷰에서. 위 이야기는 불법복제가 횡행하던 당시의 이야기였다. 현재에도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게 씁쓸하지만…

 

저희는 경쟁자들처럼 비행기를 사서 노는 게 아니라, 거의 모든 일을 회사에 처박혀서 진행했습니다. - 1981년, IBM PC 발표회 당시 기자들에게 게리 킬달을 은근히 까면서. 킬달이 IBM과의 계약을 놓치자 그 기회가 게이츠 일행에게 굴러들어온 상황이었다.

 

새로운 기준을 만들기 위해선 약간 다른 것 이상의 무언가, 즉 새로우면서도 사람들의 상상을 정말로 사로잡는 것이 필요합니다. 매킨토시야말로 제가 이제껏 본 컴퓨터들 중 유일하게 그 기준을 만든 제품입니다. - 1984년, 매킨토시 시연회에서 참고로 당시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가 아니라 애플 리사를 밀었다가 대차게 말아먹었다. 그 후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로, 빌 게이츠는 자사의 윈도우로 지지 방향을 잡는다. 그리고 2015년 예언자가 되었다!

 

누군가가 차고에서 전혀 새로운 뭔가를 개발하고 있지 않을까 두렵군요.

1998년, 한 기자의 질문, 당신이 제일 두려워 하는 장애물이 뭔가요? 에 대한 대답. 그의 통찰은 정확했다. 그 해에 나온 것이 다름아닌 구글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구글이 상장되어 화려한 전성기를 시작한 2004년, 페이스북이 탄생했다.

 

가난하게 태어난 건 당신 잘못이 아니지만, 가난하게 죽는 건 당신 잘못이다. - 머니 : 새로운 부의 법칙, 롭 무어

인터넷에서 많이 떠도는 어록이다. 물론 이 어록에 대해서 검색을 하면 나오는 거라곤 빌 게이츠의 얼굴과 이 문장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며, 이 어록에 대한 분명한 출처는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이 말을 하지 않았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는 의견도 있다.

 

1. 인생이란 원래 공평하지 못하다. 그런 현실에 대하여 불평할 생각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2. 세상은 네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세상이 너희들한테 기대하는 것은 네가 스스로 만족하다고 느끼기 전에 무엇인가를 성취해서 보여줄 것을 기다리고 있다.
3. 대학교육을 받지 않는 상태에서 연봉이 4만 달러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말라.
4. 학교선생님이 까다롭다고 생각되거든 사회 나와서 직장 상사의 진짜 까다로운 맛을 한번 느껴봐라.
5.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마라. 너희 할아버지는 그 일을 기회라고 생각하였다.
6. 네 인생을 네가 망치고 있으면서 부모 탓을 하지 마라. 불평만 일삼을 것이 아니라 잘못한 것에서 교훈을 얻어라.
7. 학교는 승자나 패자를 뚜렷이 가리지 않을 지 모른다. 어떤 학교에서는 낙제제도를 아예 없애고 쉽게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사회 현실은 이와 다르다는 것을 명심하라.
8. 인생은 학기처럼 구분되어 있지도 않고 여름 방학이란 것은 아예 있지도 않다. 네가 스스로 알아서 하지 않으면 직장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9. TV는 현실이 아니다. 현실에서는 커피를 마셨으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옳다.
10. 공부 밖에 할줄 모르는 ˝바보˝ 한테 잘 보여라. 사회 나온 다음에는 아마 그 ˝바보˝ 밑에서 일하게 될지 모른다.


마운틴휘트니 고등학교에서 졸업식때 연설했던 10가지 충고들.

640kb이면 모든 사람에게 충분한 메모리 용량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건 사실이 아니다. 근데 이것이 점점 유명해지다 보니 신경쓰였는지 공식석상에서 이런말을 하지 않았다고 불쾌해 하기까지 했다. 더 자세한 것은 기본 메모리 문제 문서를 살펴보자.

 

30년 뒤에 사람들이 컴퓨터로 이루어낼 놀라운 일이 기대됩니다.


이 예측은 그가 실재로 했던 말이고 30년뒤 사람들이 컴퓨터로 하는 쓸데 없는 일 때문에 합성되어 조리 돌림 당하고 있다.

 

농담거리

떠도는 농담이 여러 개 있다. 그중에는 그가 마법사라는 농담도 있다.

 

"Micro, Soft.
빌 게이츠가 국제적인 관심을 집중시키며 멀린다 게이츠와 결혼을 했는데 기자들이 취재를 위해 모여 있었다. 마침내 빌 게이츠와 멀린다가 기자들 앞에 나타났다. 한 기자가 멀린다에게 질문을 던졌다.

 

엄청나게 큰 재산을 가진 남편의 첫날 밤이 어떠셨습니까?

 

멀린다는 한숨을 내쉬며 귀찮은 듯 짧게 대답하고 들어가버렸다.

 

Micro, Soft./ 작고, 물렁했어요.

 

다른 기자가 빌에게도 첫날밤이 어땠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빌은 즐겁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Micro, Soft./ 작고, 부드러웠어요.

 

빌 게이츠와 별명
학창시절 빌 게이츠는 항상 몇 권의 책을 갖고 다녔고, 적어도 1년에 300권 이상의 책을 읽는 책벌레였다. 그 때문에 학교의 친구들에게「prn(인쇄물을 의미하는 print에서 따온 호칭→DOS/Unix콘솔창에서는 프린터를 의미한다)」라는 별명으로 놀림을 당했다. 이제는 어른이 된 게이츠지만 지금도 당시의 별명을 아주 싫어하는 듯, 그는 windows에서 새 폴더를 만들 때 prn이라는 이름은 붙일 수 없게 했다. 


사실 당연히 농담이다. prn은 도스 시절부터 존재한 시스템 예약어이기 때문.

 

동창 엿먹이기
학창시절 빌 게이츠는 말썽꾸러기였다. 그와 같은 반이었던 탐(Tom)은 늘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다. 세월이 흘러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세워서 부자가 되고 탐 로드니는 그냥 평범한 회사원이 되었다. 이에 샘이 난 탐은 빌 게이츠가 예전에는 말썽꾸러기 였다고 사람들에게 폭로했다. 빌 게이츠는 탐에게 복수하고자 Windows 한국판에 슬쩍 탐의 욕을 집어넣었다.

 

Windows 탐색기

빌 게이츠가 복귀할 때 뉴요커 잡지에서 "복귀하자마자 자신의 자리 윈도8을 윈도8.1로 업데이트하려고 했는데 잘 안 되자 CEO인 사티아 나델라를 사무실로 불러서 설치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CEO조차 윈도우 8.1업데이트에 실패하고 윈도우7으로 돌아갔다"는 내용의 훼이크 기사를 실은 바 있다. 결국 이때문에 열받은 빌 게이츠가 차기 윈도우 버전에 대해 뭐라 하고 사티아 나델라가 Windows 10 개발에 박차를 가해서 현재의 Windows 10이 탄생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 역시 당연히 훼이크다. 근데 국내 몇몇 언론이 거기에 낚여 진짠 줄 알고 기사를 실은 적 있다.   

신형 람보르기니 사는법,

 

대중 문화에서,


이미 전기 영화가 제작된 스티브 잡스나 마크 저커버그와는 달리, 아직 빌 게이츠를 주인공으로 한 전기 영화는 없다. 다만 1999년작 TV 영화 <실리콘 밸리의 해적들>(Pirates of Silicon Valley)에서 스티브 잡스와 함께 양대 주연으로 등장했다. 디지털 산업의 성장 과정에서 각각 하드웨어, 소프트웨어의 간판이 된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두 회사의 애증 관계를 묘사한 작품.


2001년 제작된 영화 <패스워드>(원제: Anti-trust)에 등장하는 거대 소프트웨어 업체 사장 개리 윈스턴(팀 로빈스 분)이 빌 게이츠를 모델로 했다고 알려져 있다. 제목부터가 WINDOWS 운영체계의 독점 논란을 빗댄 것.

사우스 파크 시즌 17 에피소드 08~09에 등장하는데 엑박파인 에릭 카트먼에 비협조적인 스티브 발머 암살하고 카트먼에게 무기들을 제공하고 소니의 CEO와 일기토를 떠서 머리를 박살내서 끔살시킨다.

일본의 성인용 게임 제작사 앨리스 소프트에서는 《란스 시리즈》나 《GALZOO 아일랜드》 등 여러 게임에서 그를 풍자한 게이츠란 남자 몬스터를 등장시키곤 한다.

일본 프리웨어 FPS 게임 엑스오퍼레이션의 캐릭터 모델 중 'Gates'가 있다. 텍스처에 그려진 얼굴이 똑같이 생겼고, 파일 이름도 Gates에서 확인사살.

초차원게임 넵튠에서 이름을 '빌 츠이게'로 애너그램하고 성전환한 단역 캐릭터로 등장했다.

웨스트우드의 게임인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2 유리의 복수에서는 그를 모티브로 한 단역 캐릭터가 등장한다. 유리의 복수 연합군의 3번째 미션을 하면, 시애틀에서 매시브소프트 빌 회장이 구조 요청을 보낸다. 영상을 보면 매시브소프트의 회사 로고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그것과 판박이이며, '빌 회장'의 외모도 빌 게이츠와 매우 닮았다. 그런데 한가지 반전으로 빌 회장 앞에 있는 테이블 위에는 사과 바구니가 있다. 물론 시애틀이 있는 워싱턴 주의 특산물이 사과인 영향도 있겠지만.

티미의 못말리는 수호천사에서는 코스모와 완다가 맡았던 아이들 중 하나로 그려진다.

더게임툰에선 실리콘밸리의 악마 시절을 반영했는지 비슷한(?) 악덕 경영자인 번즈로 패러디되었다.

 

빌 게이츠는 2005년 대영제국 훈장 명예 2등급(honorary KBE)을 받았다. 이 수훈 사실을 나타내는 약자로 이름 뒤에 'KBE'를 붙였다. 영연방 시민권이 없는 외국인에게는, 훈장의 등급이 1등급이거나 2등급이라도 영국 전통 양식에 따르는 기사 서임과 관계가 없는 명예 훈장을 준다. 이에 따라, 훈장의 등급은 2등급이지만 이름 앞에 Sir를 붙이지는 않는다. 

 

William는 영어권 국가에서는 별명으로 빌이라고 부른다. 실제 W 발음은 독일 등 다른 유럽국가에선 ㅂ 발음이다. 참고로 빌게이츠의 아버지인 '윌리엄 게이츠 2세'는 생존해 있다. 컴퓨터과학과의 전신 2019년 10월 24일 기준. 포브스, 2020년 5월 6일 확인. 대신 마이크로소프트 주식만 보면 2014년을 기준으로 스티브 발머 회장이 빌 게이츠 회장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다.

 

빌 게이츠 회장은 일정 부분의 마이크로소프트 주식을 처분한 후 리스크를 분산해 투자를 잘 했다. 물론 그렇다고 빌 게이츠가 가진 마이크로소프트 주식이 결코 적은 양이라는 건 아니지만. 그가 CEO로 있던 시절 휴렛패커드, DELL 등의 PC 제조사들을 협박해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끼워팔기도 했으며 그 결과 경쟁사였던 넷스케이프가 급격히 몰락함으로 인해 MS가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적이 있다. 

 

MS가 한창 전성기였을 때는 존 데이비슨 록펠러의 스탠다드오일에 비유될 만큼 악명이 높기도 했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 자선사업에 힘쓰기 시작한 것도 서로 비슷한 부분. 자녀 1인당 1천만 달러를 물려준다고 선언했다. 이것만으로도 대략 111억정도 되는 큰 금액이긴 하지만 세계 최고의 부호가 자산 99.9%를 기부한다는 것은 정말 존경받을 행보임에 틀림 없다. 출처 당장 머그샷 문서에 1977년 당시 촬영된 머그샷 사진이 있다. 이 때문에 스티브 잡스와 출신성분부터 비교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빌게이츠를 그저 돈 많은 사업가로 알고 있지만, 사실 빌게이츠 자체가 수학과 컴퓨터공학의 천재다.

 

윈도우의 기반이자, 컴퓨터에 OS의 개념을 제시한 MS-DOS를 그가 대학때부터 연구한 논문을 기반으로 사실상 단독으로 만들어냈다. 하지만 1만 달러에 달하는 가격 책정 때문에 팔리질 않았다. 현재 1만 달러라 해도 1천만원. 당시 물가를 고려해보면 엄청난 금액이다. 결국 잡스는 짤리게 된다. 1달러=1040원으로 가정하면, 350억 달러는 36.4조이다. 물론 그런 거 상관없이 예나 지금이나 자유 소프트웨어 진영은 빌 게이츠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은 편이다. 결혼 전 게이츠를 보면 우리가 아는 돈 벌기에 급급한 이미지 딱 그렇게 행동한다. 고생이라 간단히 써있기는 하지만 아프리카 및 제 3세계에서 치명적인 질병의 감염원은 바로 모기이다. 지구상의 그 어떤 동물보다도 인류를 많이 죽인 동물이 바로 모기인 것. 

 

영화배우 크리스 락이 스탠팅 코미디에서 이 문제에 대해 이아기한 적이 있다. 윈도우 폰의 완성도는 구글이 모바일 OS를 절대로 개발하지 않는다는 불가능에 가까운 가정을 해도 휴렛팩커드 webOS나 삼성의 바다 운영체제조차 이기기 힘들었을 정도로 개발 진행이 엉망진창이었다. 참고로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하던 게이브 뉴웰이 이를 보고 바로 퇴사하여 밸브 코퍼레이션을 세우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게임 하나가 운영체제와 게임 소프트웨어의 판도에 큰 영향을 준 셈. 마이크로소프트의 입장에서는 둠만큼 윈도우를 홍보할 수 있는 게임이 없었기에 의 윈도우 이식은 간절한 일이었다. 실제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드 소프트웨어에게 둠의 윈도우 이식을 부탁했을 당시에 이드는 'MS-DOS에서 잘 돌아가는 게임을 윈도우로 이식할 이유가 없다'는 식으로 거절했는데 이에 대해 마이크로소프트는 '그럼 우리가 이식한다. 당신들은 아무 것도 할 필요 없다.'고 다시 제안했고 이드는 '그럼 문제 없다'고 답하면서 둠의 윈도우 이식이 성사되었다. 이 때 함께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던 사람이 바로 드웨인 존슨이었다. 이미 엑스박스의 출시 이전 마이크로소프트는 250억 달러를 닌텐도에 인수가로 제시한 적이 있었으며 미야모토 시게루를 영입하려던 시도도 있었다. 그런데 정작 엑스박스와 더 긴밀히 연관되었던 세가의 인수는 빌 게이츠 본인이 직접 거부했다. 윗 문단들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내외적으로 오죽했으면 한때 빌 게이츠의 별명이 실리콘 밸리의 악마(Demon of Silicon valley)라고 불릴 정도였다. 

 

현재는 Stack Overflow의 CEO이다. 빌 게이츠 시니어. 1925년생인데 아직 살아 계신다. 키가 무려 200cm로 아들인 빌 게이츠보다 훨씬 크다. 그 프로그램이 계속 발전한 것이 바로 MSE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홈페이지 뉴스란에 자신도 빚을 질 것을 권유하거나 금방 빌 게이츠처럼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메일을 많이 받아봤다고 월스트리트 저널과 인터뷰를 한 기사가 올라와있다. 이때 오보를 주도한 사람이 전 MBC 사장인 김장겸 당시 기자였다. 당시에는 묻혔다가 훗날 2014년 미디어오늘의 취재로 인해 밝혀진 것이다. 기사 참고로 이 오보가 뜨기 며칠 전인 4월 1일 홍콩의 배우 장국영이 사망했다. 

 

AOL의 경우 AOL.COM에서 언급하고 있고, 넷스케이프는 회사가 거의 망한 후 실제로 MS에 인수되었다. 리히텐슈타인이란 이름은 원래 비엔나 근교 리히텐슈타인 성에서 유래했다, 게리 킬달은 경비행기 매니아였다. CP/M의 성공으로 돈을 짭짤하게 만졌기 때문에 경비행기를 살 여력이 있었다. 

 

탐색기->톰색기->톰새끼->톰 새끼 물론 사실 여부와는 상관 없이 Windows 8이 이런저런 문제점으로 욕을 먹은 건 사실이고 문제점을 개선했다는 Windows 8.1 또한 Windows 7에 비해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고 대다수 사용자들이 Windows 7을 계속 쓰고 Windows 10으로 껑충 업그레이드했다. 아마 Windows 8과 Windows 8.1의 성능에 불만을 가진 일부 사용자들에 의해 생겨난 루머인 듯하다. 히라이 카즈오 CEO로 추정.

 

"2020년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에 대해 치료제 개발 지원을 위해서 재단을 통해 1500억원의 돈을 기부하였다. 거기에 한국의 코로나19 방역 시스템 및 대응 방법 대해서 연일 긍정적인 반응과 함께 '한국이 모범이 되고 있다'는 등 찬사를 보내는가 하면 4월 10일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직접 전화를 하여 백신개발에 협력하겠다는 의견까지 내비치고 있다. 이미 빌 게이츠는 수년 전부터 범유행성전염병의 유행을 경고하며 사전에 백신 및 치료제 등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한 미국의 기업가 월리엄 게이츠(William H. Gates, 1955~ ) 

 

관련 사이트

관련 문서

출처 ^ 참고문헌

[빌 게이츠 [Bill Gates] -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인물세계사,)

[ⓒ 커뮤니케이션북스 [디제라티 (촬영: )

[https://www.christianpost.com/news/bill-gates-reveals-family-goes-to-catholic-church-it-makes-sense-to-believe-in-god-116166

[http://gs.statcounter.com/os-market-share/desktop/worldwide, 

 

#빌 게이츠/ Bill Gates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한 미국의 기업가 #월리엄 게이츠(William H Gates #Stack Overflow의 CEO이다 #빌 게이츠 시니어 1925년생인데 아직 살아 계신다 #키가 무려 200cm로 아들인 빌 게이츠보다 훨씬 크다 #프로그램이 계속 발전한 것이 바로 MSE다 #마이크로소프트 #홈페이지 뉴스 #빌 게이츠처럼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메일을 많이 받아 #월스트리트 저널 #Windows 탐색기 #빌 게이츠가 복귀할 때 뉴요커 잡지에서 "#복귀하자마자 자신의 자리 윈도8을 윈도8/1로 업데이트 #CEO인 사티아 나델라를 사무실로 불러서 설치해달라고 부탁했다 #CEO조차 윈도우 8 1업데이트에 실패 #윈도우7으로 돌아갔다 #내용의 훼이크 기사 #열받은 빌 게이츠 #차기 윈도우 버전 #사티아 나델라가 Windows 10 개발 #현재의 Windows 10이 탄생했다는 이야기 #훼이크 #국내 몇몇 언론이 거기에 낚여 진짠 줄 알고 기사를 실은 적 있다 #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가 아니라 애플 리사 #

  • 빌 게이츠의 굴욕

  • 세계정복

  • 억만장자

  • Thanks Bill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 #빌 게이츠는 2005년 대영제국 훈장 명예 2등급(honorary KBE)을 받았다 #이 수훈 사실을 나타내는 약자로 이름 뒤에 'KBE'를 붙였다 #영연방 시민권이 없는 외국인 #훈장의 등급이 1등급이거나 2등급이라도 영국 전통 양식 #기사 서임과 관계가 없는 명예 훈장을 준다 #훈장의 등급은 2등급이지만 이름 앞에 Sir를 붙이지는 않는다 #William는 영어권 국가에서는 별명으로 빌이라고 부른다 #실제 W 발음 #독일 등 다른 유럽국가에선 ㅂ 발음이다 #참고로 빌게이츠의 아버지인 '윌리엄 게이츠 2세'는 생존해 있다 #컴퓨터과학과의 전신 2019년 10월 24일 기준 #포브스 2020년 5월 6일 확인 #마이크로소프트 주식 #2014년을 기준으로 스티브 발머 회장 #빌 게이츠 회장 #일정 부분의 마이크로소프트 주식을 처분한 후 리스크를 분산해 투자 #빌 게이츠가 가진 마이크로소프트 주식이 #CEO로 있던 시절 휴렛패커드DELL #PC 제조사들을 협박해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끼워팔기 #경쟁사였던 넷스케이프가 급격히 몰락함으로 인해 #MS가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적이 있다 #MS가 한창 전성기 #존 데이비슨 록펠러 #스탠다드오일에 비유될 만큼 악명이 높기도 했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 자선사업에 힘쓰기 시작한 것도 서로 비슷한 부분 #자녀 1인당 1천만 달러를 물려준다고 선언했다 #111억정도 되는 큰 금액 #세계 최고의 부호 #자산 99점9%를 기부한다는 것은 정말 존경받을 행보임에 틀림 없다 #머그샷 문서에 1977년 당시 촬영된 머그샷 사진이 있다 #스티브 잡스와 출신성분부터 비교되기도 한다 #빌게이츠를 그저 돈 많은 사업가 #빌게이츠 자체가 수학과 컴퓨터공학의 천재다 #윈도우의 기반 #컴퓨터에 OS의 개념을 제시한 MS-DOS #대학때부터 연구한 논문을 기반으로 사실상 단독으로 만들어냈다 #1만 달러에 달하는 가격 책정 때문에 팔리질 않았다 #현재 1만 달러라 해도 1천만원 당시 물가를 고려해보면 엄청난 금액이다 #스티브잡스 #1달러=1040원으로 가정하면 350억 달러는 36/4조이다 $결혼 전 게이츠 #우리가 아는 돈 벌기에 급급한 이미지 딱 그렇게 행동한다 #아프리카 및 제 3세계 #치명적인 질병의 감염원은 바로 모기이다 #지구상의 그 어떤 동물보다도 인류를 많이 죽인 동물이 바로 모기인 것 #영화배우 크리스 락이 스탠팅 코미디에서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윈도우 폰의 완성도 #구글이 모바일 OS를 절대로 개발하지 않는다는 불가능에 가까운 가정 #휴렛팩커드 #webOS #삼성의 바다 운영체제조차 이기기 힘들었을 정도로 개발 진행이 엉망진창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하던 게이브 뉴웰이 이를 보고 바로 퇴사 #밸브 코퍼레이션을 세우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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