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지정 문화재,1
경남 거창, 거열산성,/ 합천 삼가고분군, [ 三嘉古墳群 ]/ 국가사적 승격 지정 예고,
거열산성군립공원,
분류/ 위치/ 문화재지정/ 출처/ 원문보기/
자연 > 자연관광지 > 군립공원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거안로 1173-47 |
[거열성] 경상남도기념물 제22호(1974.12.28 지정) |
대한민국구석구석 원문보기 |
목차
개요
거창군은 경남 서북부의 내륙 산간지방으로 덕유산국립공원을 경계로 경상북도, 전라북도와 접해있다. 북쪽은 덕유산, 월봉산, 수도산, 서쪽은 기백산, 금원산, 동쪽은 의상봉, 비계산 등이 솟아있으며 남쪽은 비교적 낮은 보록산, 철마산들로 둘러싸여 산간분지를 형성하고 있다. 거열산성 군립공원은 거창읍의 서편으로 3km 정도 떨어져 있는 공원으로 백제의 충신 열사와 의용군들이 나라를 재건하려는 목적으로 축성한 거열성 일대이다.
거열성, 기념비,
거열성은 백제 패망 후 3년간 항전하다가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신라 장수 김흠순, 천존 등에 함락되었고, 백제 부흥군 700여명이 참수당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역사의 산 교육장이기도 하다. 현존하는 유적으로 길이 2.1km, 폭 7m의 산성이 부분적으로 원형을 간직하고 있으며, 망루터 자리 7개소, 우물 2곳이 있다. 또한 자전거 전용도로변에 위치한 거창조각공원이 형성되어 있어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문헌기록 속 거열성, 실체 규명 노력 끝에 사적 지정 예고 결실, 삼국항쟁기의 모습 간직한 고대 성곽으로서 보존가치 탁월 평가, 경남도, 고대 유적 안정적 보존관리 위해 사적 지정 노력 경주,
경상남도와 거창군(군수 구인모)는 도기념물인 거열산성이 지난 7월 8일 개최된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심의결과, 국가사적으로 승격 지정 예고 됐다고 밝혔다.
거열산성(居列山城)은 경남 거창군의 진산인 건흥산(乾興山, 해발 572m) 정상부에 조성된 테뫼식 석축산성*으로, 1974년에 도기념물 제22호로, 1983년에 군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체계적인 복원정비와 보존관리가 이뤄져 온 경남의 대표적인 고대 성곽유적이다. * 테뫼식 산성 : 산봉우리를 둘러서 쌓은 산성,
거창 거열산성 국가사적된다, 시기를 달리한 독특한 성곽…
거열산성, 국가사적 승격 지정 예고, 삼국항쟁기·통일기 고대사 중요 요적,
경상남도 기념물인 거창군 거열산성이 국가사적으로 승격될 예정이다.
경남도와 거창군은 최근 열린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에서 거열산성이 국가사적으로 승격 지정 예고됐다고 20일 밝혔다.
거열산성은 거창군 건흥산 산봉우리를 둘러서 쌓은 테뫼식 석축산성으로 지난 1974년 도 기념물 22호로 지정됐다. 1983년에는 군립공원으로 지정돼 그동안 체계적인 복원 정비와 보존 관리가 이뤄져 온 경남의 대표적인 고대 성곽 유적이다.
거창군 일원은 6~7세기 백제와 신라의 영토 확장을 위한 치열한 각축장이자 삼국통일 후에는 지방행정 구역 9주의 하나인 거열주(居列州)가 설치될 정도로 고대 동서를 잇는 지정학적 요충지였다.
삼국사기에 '거열성(居列城)', '만흥사산성(萬興寺山城)'으로 기록돼 있는 등 삼국 항쟁기와 통일기의 고대사를 밝혀 줄 중요한 유적으로 주목받아 왔다.
1115m의 거열산성은 6세기 중엽 신라가 백제 방면으로 진출하면서 축성한 1차성과 7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증축된 2차성으로 이뤄진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시기를 달리하는 성곽의 축조 방법과 운영 형태에 차이가 확인돼 고대 산성의 변화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최고의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석축 성벽 외에도 성내에서는 완성도가 높은 네모형태의 집수시설도 확인됐다.
거열산성은 앞으로 30일간의 지정 예고 기간을 통해 사적 지정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9월 중 사적 지정 여부가 최종 결정될 전망이다.
경남도 류명현 문화관광체육국장은 "함안 남문외고분군, 합천 삼가고분군 등 도내 가야유적 3곳의 사적 지정 신청 준비가 마무리되고 있어 연내 추가 사적 지정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경남도기념물인 거열산성이 국가사적으로 승격 지정 예고됐다고 20일 밝혔다. 거열산성(居列山城)은 경남 거창군 건흥산(해발 572m) 정상부에 조성된 산봉우리를 둘러서 쌓은 테뫼식 석축산성이다.
거열산성은 1974년에 경남도기념물 제22호로, 1983년에 군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체계적인 복원정비와 보존관리가 이뤄져온 경남의 대표적인 고대 성곽유적이다.
거창군 일원은 6~7세기 백제와 신라의 영토확장을 위한 치열한 각축장이자 삼국통일 후에는 지방행정구역 9주의 하나인 거열주가 설치될 정도로 고대 동서를 잇는 지정학적 요충지였다. 이 때문에 거열산성은 <삼국사기>에 ‘거열성’, ‘만흥사산성’으로 기록돼 있는 성곽으로 삼국항쟁기와 통일기의 고대사를 밝혀줄 중요한 유적으로 주목받아왔다.
거열산성(둘레1115m)은 6세기 중엽 신라가 백제 방면으로 진출하면서 축성한 1차성과 7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증축된 2차성으로 이루어져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그래서 시기를 달리하는 성곽의 축조방법과 운영형태에 차이가 확인돼 고대 산성의 변화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최고의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석축성벽 외에도 성내에서는 완성도가 높은 네모 형태의 집수시설도 확인됐다.
거열산성은 앞으로 30일간의 지정 예고기간을 통해 사적 지정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9월 중 사적 지정 여부가 최종 결정될 전망이다.
거창군 거열산성 생태습지 조성,
경남 거창군이 거열산성군립공원에 생태습지를 조성했다. 3일 거창군에 따르면 거열산성군립공원 내 하부약수터 인근 생태습지 용지를 정비해 10여 종의 꽃식물을 식재하고 탐방로를 조성했다.
경남 거창군이 거열산성군립공원에 생태습지를 조성했다. 3일 거창군에 따르면 거열산성군립공원 내 하부약수터 인근 생태습지 용지를 정비해 10여 종의 꽃식물을 식재하고 탐방로를 조성했다.
조성한 생태습지 탐방로는 지역에서 흔히 자생하는 습생 꽃을 심고 쾌적한 환경으로 가족쉼터 기능과 산행객들이 머물고 즐길 수 있는 생태관광자원 활용했다. 산 능선부에 위치한 유휴농지 1만 2773㎡ 중 약 6000㎡을 17개의 다랑논으로 복원했다. 잔여 부지에는 버드나무 자생지로 관리한다.
심은 식물은 거창지역에서 쉽게 관찰되는 수크령, 연꽃, 수련, 노랑어리연꽃, 벌개미취, 원추리, 쑥부쟁이, 제비붓꽃, 꽃창포, 구절초 등 10종과 보리수나무를 심어 계절별 컨셉에 맞추었다.
거창군 구인모 군수는 평소 군민들이 즐겨 찾는 건흥산(거열산성군립공원) 능선에 보물 같은 생태습지를 조성했다며 생태습지가 전국 최고의 생활권 등산로로 거듭남과 동시에 등산객의 만족도 제고에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10여종의 꽃식물 식재, 탐방로 조성, 볼거리와 힐링의 산행객 쉼터로 변신,
거창 건흥산 정상(해발 572m)거열산성군립공원 내에 생태 습지 등이 조성돼 산행객들의 힐링의 쉼터로 변신, 새로운 생태관광지로 각광받을 전망이다.
거창군은 거열산성군립공원 내 하부약수터 인근 생태습지 부지를 정비해 10여종의 꽃식물을 식재하고 탐방로를 조성했다고 3일 밝혔다.
이번에 조성한 생태습지는 산 능선부에 위치한 유휴농지 12,773㎡중 약6000㎡를 다랑이 논(17다랑이)으로 복원했고, 잔여부지는 버드나무 자생지로 관리한다.
식재한 식물은 거창에서 쉽게 관찰되는 수크령, 연꽃, 수련, 노랑어리연, 벌개미취, 원추리, 쑥부쟁이, 제비붓꽃, 꽃창포, 구절초 등 10종과 보리수나무를 식재해 계절별 컨셉에 맞게 조성됐다.
거열산성 생태습지 탐방로는 지역에서 흔히 자생하는 습생 꽃을 심고 쾌적한 환경을 조성해 가족쉼터 기능과 거열산성의 역사 유적 여행으로 산행객들이 머물고 즐길 수 있는 생태관광자원 활용 목적으로 조성했다.
국가지정문화재 지정으로 추진하고 있는 거열산성(경상남도기념물 제22호)은 건흥산자락에 약 1200m의 성곽이 있다.
거열산성은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거열성(居列城)으로 비정되는 곳으로 백제멸망 후 3년간 백제부흥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다 문무왕 3년인 663년 신라장군 흠순(欽純)과 천존(天存)에 의해 함락되어 백제부흥운동군 700명이 전사한 역사의 현장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시대에 거창지역은 백제와 신라가 서로의 영역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지정학적·군사적 요충지로, 20개소에 이르는 산성이 교통로와 거창분지 일원에 집중적으로 축조되어 있다.
‘삼국사기’에는 문무왕 13년인 673년 나당(羅唐)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신라의 거점지역 9곳에 산성을 쌓은 기록이 확인되는데, 여기에 나오는 거열주 만흥사산성(萬興寺山城)은 거열산성을 지칭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따라서 거열산성은 외세에 대항한 국난 극복의 현장으로 그 역사적 중요성과 가치가 매우 큰 유적이라 할 수 있다.
거창군은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거열산성군립공원이 전국의 산행객들이 즐겨찾는 힐링의 공간으로 가꾸어 갈 계획이다.
구인모 군수는 “평소 군민들이 즐겨 찾는 건흥산(거열산성군립공원) 능선에 보물 같은 생태습지를 전국 최고의 생활권 등산로로 거듭남과 동시에 등산객의 만족도 제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거창군은 거열산성군립공원 내 하부약수터 인근 생태습지 부지를 정비하여 10여종의 꽃식물을 식재하고 탐방로를 조성했다고 3일 밝혔다.
‘거열산성 생태습지 탐방로’는 지역에서 흔히 자생하는 습생 꽃을 심고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여 가족쉼터 기능과 산행객들이 머물고 즐길 수 있는 생태관광자원 활용 목적으로 조성했다.
이번에 조성한 생태습지는 산 능선부에 위치한 유휴농지 12,773㎡중 약6,000㎡를 다랑이 논(17다랑이)으로 복원했고, 잔여부지는 버드나무 자생지로 관리한다.
식재한 식물은 거창에서 쉽게 관찰되는 수크령, 연꽃, 수련, 노랑어리연, 벌개미취, 원추리, 쑥부쟁이, 제비붓꽃, 꽃창포, 구절초 등 10종과 보리수나무를 식재하여 계절별 컨셉에 맞게 조성됐다.
구인모 거창군수는 “평소 군민들이 즐겨 찾는 건흥산(거열산성군립공원) 능선에 보물 같은 생태습지를 전국 최고의 생활권 등산로로 거듭남과 동시에 등산객의 만족도 제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거창군은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거열산성군립공원이 군민 모두가 애착과 자긍심을 가지는 곳으로 가꾸어 갈 계획으로 공원관리에 군민, 동호인, 환경전문가 등의 동참과 협력을 당부했다.
함안 남문외고분군,[ 咸安南門外古墳群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에 있는 고분군.
지정종목/ 지정번호/ 지정일/ 소장소재지/ 종류/분류크기/
시도기념물 |
경남기념물 제226호 |
2000년 08월 31일 |
함안군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17-9 외 지도 |
고분군 |
면적 26,731㎡ |
함안 남문외 고분군은 가야읍 가야리 17-9번지 일원으로 남문마을의 맞은편 구릉지에 크고 작은 고분들이 20여기 이상 분포하고 있다.
이 고분들은 지방도로로 인해 두 무리로 갈라져 있으며, 대부분의 땅이 개인소유로서 경작되어 봉토가 많이 깍인 상태이다.
대부분 삼국시대의 석실묘(돌방무덤) 및 석관묘(돌널무덤)로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주변에는 도항 · 말산리 고분군과 봉화산성, 전(傳) 아라왕궁지 등이 분포하고 있어 삼국시대 함안지역의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학술적 자료로 2000년 8월 31일 기념물 제226호로 지정되었다.
2000년 8월 31일 경상남도기념물 제226호로 지정되었다. 여항산(艅航山:770m)에서 북서쪽으로 뻗어내린 능선 제일 북쪽 끝부분에서부터 길게 형성된 구릉지에 줄지어 있다.
동쪽으로는 가야읍 시가지가 보이고 북서쪽으로는 삼봉산(三峰山:302m)과 선왕동, 아라왕궁지(阿羅王宮址) 등이 자리잡고 있으며 남동쪽으로는 함안말산리고분군(咸安末山里古墳群:사적 85)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차등이라고도 불리는 이 구릉지대는 아라왕궁지를 보호하는 토성 및 제방 역할을 하고 있는 요충지였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 [ 咸安 末伊山 古墳群 ]
분야/ 유형지역/ 시대/ 문화재 지정 일시/ 문화재 지정/ 번호출처/
역사/전통 시대 |
유적/고분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484 |
고대/삼국 시대/가야 |
2011년 7월 28일 |
사적 제515호 |
디지털함안문화대전-함안 말이산 고분군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구덩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남강 지류인 덕천(德川) 서편에 남북으로 전개되는 구릉 위에 30∼50m 거리를 두고 현재 외형상으로 분명하게 알 수 있는 3기가 있다.
무덤의 외부 모습은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으로 무덤 밑지름 20m 내외, 높이 5m 내외의 비교적 큰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무덤은 일제강점기에 대부분 도굴되었고, 지금까지 학술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규모와 성격은 밝혀지지 않았다.
사적 제84호로 지정된 함안 도항리 고분군과 제85호로 지정된 함안 말산리 고분군에서 조사된 내용과 같이 무덤 내부의 구조가 구덩이식 돌방무덤〔竪穴式石室墳〕으로 판단된다.
목차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말산리에 있는 가야 시대 고분군.
개설
함안 말이산 고분군(咸安末伊山古墳群)은 아라가야(阿羅伽倻) 왕과 귀족의 묘역으로서, 아라가야의 정치적 성장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아라가야의 모습이 1914년 이후 지속적으로 전개된 고고학 발굴 조사를 통해 더욱 뚜렷이 확인되고 있다.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배후의 말이산 전역에 걸쳐 고분군이 입지하고 있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은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에 입지한 말이산의 능선을 따라 위치해 있다.
정식적인 발굴 조사는 1914년에 처음으로 실시되었으며, 1917년 52기의 고분에 대한 분포도가 작성되었고 각 고분의 입지, 분포, 외관과 현상 등에 대한 기술이 이루어졌다. 이후 1986년에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14-1호분, 14-2호분이 조사되었고, 1991년에 국립 가야 문화재 연구소에 의해 도항리 35호분과 그 주변 지역에 대한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1992년에는 초대형 덧널무덤[목곽묘]인 마갑총(馬甲塚)이 발견되어 함안 말이산 고분군의 역사적 가치가 부각되었다. 1992~1997년에는 고총 고분인 5호분, 8호분, 15호분 등이 조사되었고, 1997~1998년까지 실시된 경남 고고학 연구소의 시굴 조사, 2006년 동아세아 문화재 연구원에 의해 실시된 도항리 6호분 발굴 조사, 2014년 경남 발전 연구원 역사 문화 센터의 20호분과 21호분 그리고 봉분의 삭평으로 새롭게 존재가 드러난 100호분 및 101호 발굴 조사, 2015년 우리 문화재 연구원의 25호분, 26호분 발굴 조사 등에 의해 고분의 성격이 명확히 밝혀지게 되었다.
함안 지역의 가야 시기 유적에 대한 30여 차례의 발굴 조사를 통해 아라가야의 사회상을 파악할 수 있었고, 함안 말이산 고분군의 조성 과정, 내용에 대한 기초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고고학의 주요한 성과이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에는 100여 기의 고분이 분포하고 있고, 삼한 시기부터 가야가 멸망하는 6세기 중엽까지의 고분이 모두 확인되며 유산의 완전성을 유지하고 있다.
형태
말이산의 봉토분은 아라가야의 전성기인 5세기 후반~6세기 초에 집중 조영되었다. 남-북으로 이어진 주 능선과 서쪽으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가지 능선의 정부(頂部)에 대형의 봉토분이, 비탈면에 중소형의 고분이 위치하고 있다. 또한 말이산의 북쪽 일대에는 아라가야의 전신인 삼한 시대 안야국(安邪國)의 널무덤[목관묘]과 덧널무덤이 밀집 분포하고 있다. 따라서 함안 말이산 고분군은 기원 전후부터 아라가야 멸망 때까지 약 550년간에 누대로 조영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출토 유물
토기 2,010점, 철기 2,479점, 장신구 3,381점, 기타 91점 등 총 7,961점의 다종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유물들을 통하여 고대 한반도 남부의 일원으로서 주변 국가의 교류, 갈등, 정복 등의 관계상을 잘 알 수 있다. 토기는 주로 통 모양 굽다리 접시와 불꽃무늬 굽다리 접시, 손잡이 잔, 문양 뚜껑, 각종 항아리와 그릇 받침 등으로 4~5세기 대 아라가야 양식 특유의 토기들이다. 철기도 출토되는데, 쇠창과 화살촉 등의 무기류이다. 마구류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대형 봉분에만 부장되는 덩이쇠는 풍부한 철을 바탕으로 고대 국가로 성장한 아라가야의 진면목을 보여 주고 있다. 한편, 각종 말 띠 드리개나 말 띠 구미개 등에는 금과 은을 활용한 장식적 요소들이 가미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지배층의 화려한 면모도 엿볼 수 있다. 또 아라가야의 대외 교류를 가늠할 수 있고 아라가야를 상징하는 불꽃무늬 토기가 있어 '철의 왕국'으로 불리었던 아라가야의 우수한 문화상을 엿볼 수 있다.
현황
고분군이 위치한 능선은 오랜 세월 동안 차별 침식의 결과로 형성된 잔구성 구릉지에 해당된다. 고분은 구릉의 정선부와 비탈에 밀집해서 조성되었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의 북쪽은 주택, 일제 강점기에 설치된 철도에 의해 원형이 훼손된 상태이고, 남쪽 끝부분은 도동 마을로 이어지는 도로에 의해 능선이 절단된 상태이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 이 일대에 대해서도 도시 개발에 따른 문화재 조사를 충실히 하고 있으며, 그 결과 다수의 고분들이 존재하고 있음이 밝혀져 가야 시대 당시의 원형을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의 말이산 북쪽 일대에 대한 발굴 조사 성과를 통해 고분군의 범위뿐만 아니라 이 일대에 조영되었던 고분의 구조 및 성격까지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의 북쪽 경계는 함마 대로[현재의 가야로]가 지나는 함안군 가야읍 말산리 451-1번지 일원임을 알 수 있었으며, 주 능선과 제1 가지 능선 사이에 가지 능선이 하나 더 존재하고, 그곳[도항리 428-1번지 일원]에도 가야 시대의 고분이 밀집 분포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제1 가지 능선의 끝이 현재보다 북서쪽으로 더 이어짐을 확인하였고, 그 끝자락에 대형 봉토분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가야 시대의 함안 말이산 고분군은 현재의 사적 범위에서 주 능선이 북쪽으로 200m, 제1 가지 능선이 서쪽으로 300m, 주 능선과 제1 가지 능선 사이의 가지 능선이 서쪽으로 200m 정도 더 이어져 있었으며, 이로써 함안 말이산 고분군은 지금보다 약 8만 ㎡가 더 넓었던 셈이다.
1964년에 함안 도항리 고분군과 함안 말산리 고분군이 각각 사적 제84호와 사적 제85호로 지정되었다가, 역사적 특성을 고려하여 같은 산자락에 걸쳐 있는 두 고분군을 통합하여 2011년 7월 28일에 사적 제515호로 재지정하였다. 사적으로 지정된 지번은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484번지 등 562필지이며, 면적은 52만 5221㎡이다.
의의와 평가
함안 말이산 고분군은 아라가야의 정치적 성장과 문화를 잘 보여 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각 시기를 대표하는 고분의 특성이 잘 드러나고 있어 가야와 동북아시아 문화권의 국제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매우 적절한 유산으로 보편적 가치를 지닌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도굴이 심하였으며 환두대도(環頭大刀), 발형기대(鉢形器臺), 단경호(短頸壺), 굽다리접시(高杯), 배 모양 토기 등의 토기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다. 그밖에 파괴된 석실의 흔적과 토기조각 등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는데 대형 석실의 덮개돌은 마을의 표지석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보호면적은 2만 6731㎡이며, 함안군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 제1호, 2호, 3호분 전경, 일제강점기 촬영된 함안 말이산 고분군 제1호, 2호, 3호분의 모습이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 / 도항리 고분군 〈함안 말이산 고분군〉. 사적 제515호.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와 말산리 일대의 말이산 구릉지대에 입지하고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이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 / 도항리 고분군〈함안 말이산 고분군〉.
사적 제515호.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와 말산리 일대의 말이산 구릉지대에 입지하고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이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은 함안천과 광정천에 둘러싸인 해발 50m 정도의 낮은 구릉 능선의 정선부를 따라 5∼6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113기의 토광목곽묘, 수혈식 석곽묘, 수혈계 횡구식 석실묘, 횡혈식 석실묘 등 큰 무덤들이 나란히 입지한 함안지역의 최고 지배자집단 아라가야 지배층의 군집 묘역으로 삼국시대 전기간 동안 조영된 중심고분군이다. 한편, ‘함안도항리고분군(사적 제84호)’과 ‘함안말산리고분군(사적 제85호)’이 ‘함안 말이산 고분군(사적 제515호)’으로 통합 재지정되었다.
고분군이 위치하는 함안지방은 안야(安耶)·아나(阿那)·안라(安羅) 등으로도 불리는 아라가야(阿羅加耶: 阿羅國)의 본거지로 비정되고 있는 곳이다. 안야는『삼국유사(三國遺事)』에 아라가야로 기록되기 이전에 함안지역에 웅거하던 변한(弁韓) 12국 중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으나, 5세기에 들어서면서 안라 또는 아라로 바뀌게 된다.
흔히 가야제국(加耶諸國) 가운데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였던 것은 김해의 구야국(狗倻國: 金官加耶)고령의 대가야(大加耶)로 알려져 있으나 함안의 아라가야도 큰 세력을 갖추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아라가야는 김해의 구야국, 고령의 대가야와 함께 가야의 중심세력으로 존재하였고, 국력이 가장 강력하였을 때가 5세기로 여겨진다. 이 고분군은 그때의 지배계급의 무덤으로 판단되고 있다.
합천 삼가고분군, [ 三嘉古墳群 ]
이칭/ 별칭/ 유형/ 시대/ 성격/ 건립시기/ 연도/ 소재지/ 소유자/ 관리자/ 문화재/ 지정번호/ 문화재 지정일/
합천삼가고분군 |
유적 |
고대/삼국/가야 |
무덤군 |
대가야시대, 5∼7세기 초반 |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양전리 산76,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양전리 369 |
국유 |
합천군 |
경상남도 시도기념물 제8호 |
1974년 02월 16일 |
목차
정의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돌덧널무덤·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시도기념물.
삼가고분군은 1974년 2월 26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8호로 지정되었다. 이 고분군은 자굴산(해발 897m) 서쪽 사면을 근원으로 하는 야산 정상부와 그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크고 작은 봉토(封土)를 가진 것이 수백여 기에 달하나 대부분 일제시대부터 도굴당해 현재 원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소수에 불과하다. 1981년 6월 이 고분군 주위에 도로가 확장되면서 동아대학교박물관에서 일부 고분을 발굴조사하였다.
내용
삼가고분군은 모두 9기가 발굴조사되었다. 제4·5·6호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러널식〔多槨式〕으로 유구(遺構)는 구덩식〔竪穴式〕·굴식〔橫穴式〕·앞트기식〔橫口式〕으로 확인되었다.
구덩식은 장폭(長幅)의 비율이 큰 장방형(長方形)으로서 가야고분이라고 통칭되어온 것이다. 굴식과 앞트기식은 정방형(正方形)에 가까운 평면구조로서 남쪽 또는 서쪽으로 장벽에 치우친 널길〔羨道〕이나 좁은 입구를 가진 형태이다. 봉토는 판축(版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후에 동일 봉분 내에 유구가 첨가되어 여러널식으로 변화되면서 판축층을 자르고 있었다.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유구 내의 머리·발 위치에서 긴목항아리〔長頸壺〕·굽다리접시〔高杯〕·그릇받침〔器臺〕등의 토기와 쇠칼〔鐵刀〕·널못 등의 철기가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삼가고분군의 무덤구조와 출토유물의 특징을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볼 수 있다. 즉, 이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토기류는 대가야식의 토기와 신라후기양식의 토기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조사된 고분들의 축조연대가 대가야의 멸망을 전후한 시기임을 알려준다.
그리고 대략 이른 식의 돌덧널〔石槨〕에서는 대가야식 토기가, 늦은 시기의 돌덧널과 돌방〔石室〕에서는 신라후기양식의 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묘제의 교체시기에 대해 시사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조사된 고분들에 한정할 경우 6세기 중엽부터 7세기 전반 사이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완전히 파괴된 제4호분과 제1호분 봉토층에서는 5세기대의 가야토기가 출토되어 이질적인데, 이를 통해 전체고분군은 이미 5세기나 그 이전부터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고분군을 축조한 집단은 대가야의 지배체제 아래에 있던 지역의 지배집단이었고 대가야의 멸망 후에도 그 세력이 약화되지 않고 신라의 지역집단으로 잔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단지 경주지역의 돌방무덤에서 출토되지 않고 백제지역의 돌방무덤에서 많이 출토되는 널고리나 널못 등이 이 고분군에서 출토되어 백제와의 관련성을 시사하고 있다. 이것은 비록 신라토기가 출토되더라도 대가야 말기에 백제의 영향으로 굴식돌방이 등장했을 가능성, 즉 백제 웅진시대(熊津時代)의 고분문화가 이 고분군의 축조에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양전리 산76 및 369번지 일대에 위치한 삼국시대 고분군이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분군이 위치한 곳은 합천군과 의령군의 경계가 되는 자굴산(해발 897m)에서 뻗은 능선의 말단부에 해당되는 야산의 낮은 구릉지대이다. 고분군의 서쪽과 북쪽에는 하천을 낀 좁은 평야가 전개되고 고분군 바로 앞으로 삼가에서 합천을 잇는 국도가 나 있다.
고분들은 야산의 능선 정상부와 그 사면에 수백 기가 분포하고 있는데 대형의 봉토를 가진 것들은 능선의 정상부를 따라 열을 이루고 주변의 사면에는 소형 봉토분 또는 봉토가 없는 고분들이 무질서하게 분포한다. 고분들은 일제강점기 이후 계속된 도굴로 거의 파괴되고 원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10여 기도 되지 않는다. 고분군 가운데 국도변에 접한 4기의 봉토분(3-6호분)이 1981년 국도의 확포장시 파괴되어 이것과 함께 주변에 있던 봉토분 5기(1·2·7-9호분)가 동아대학교박물관에 의해서 발굴 조사되었다.
발굴된 9기의 고분 가운데 1기(4호분)는 완전히 파괴되어 원상을 확인할 수 없었고, 1기의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으로 구성된 5호분과 1기의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墓)으로 구성된 7호분을 제외하면, 모두 외견상 하나의 봉토 내에 2기 이상의 덧널이나 돌방이 설치된 여러덧널식(多槨式)이다. 여러덧널무덤은 고령(高靈) 지산동(池山洞)의 고분들과 같이 동시에 축조된 으뜸덧널(主槨)과 순장덧널(殉葬槨)의 성격이 아니고, 먼저 축조된 봉토분에 덧널을 연이어 축조하고 봉토를 이어나가거나 먼저 축조된 봉토를 파서 덧널을 축조한 것들이다. 따라서 조사한 9기의 봉토분에서는 모두 36기의 덧널이나 돌방이 확인되었는데, 이들은 구덩식 또는 앞트기식돌덧널(橫口式石槨) 26기, 화장무덤 1기, 굴식돌방무덤 9기로 나누어진다.
그 가운데 1호분은 저경 17m, 높이 3.12m의 원형봉토분인데, 봉분의 내부에서는 7기의 돌덧널(A-G유구)과 1기의 조선시대 돌덧널(H유구)이 발견되었다. 봉토의 축조방법과 유구의 레벨 등으로 보아 이 고분은 A유구를 축조하고 덮은 봉토에 다른 유구들이 순차적으로 덧붙여지거나 먼저 축조된 유구의 봉토를 파고들어와 축조된 것이 확인되었다. 각 유구의 배치는 일관성이 없다. 돌덧널(石槨)들은 깬돌(割石)을 이용해 쌓았고 대부분 위에는 점판암제의 편평석으로 뚜껑을 하였으나 G유구에서는 뚜껑돌을 확인할 수 없었다.
돌덧널무덤들 가운데 A, B, C, G유구는 비교적 길이가 길고 폭이 좁은 세장(細長)한 장방형(長方形)인데 비하여, D, E, F유구는 길이가 짧은 일반적인 장방형이었다. 전자의 경우 바닥에 잔자갈을 깔았으나 후자의 경우는 납작한 소형 냇돌(川石)을 깔아 비교되었다. 레벨로 보아 대략 전자가 먼저 축조되고 후자가 나중에 축조된 것으로 파악되며 전체 유구의 축조 순서는 A→B→C · G→D · E · F→H유구의 순으로 추정된다. 출토된 유물은 비교적 빈약한 편으로 주류를 이루는 것이 토기이고 나머지는 관못(棺釘), 관고리, 손칼(刀子) 등의 철기류와 금동제귀고리 등의 장신구이다.
3호분은 이미 봉토가 잘려나가 파괴된 상태에서 조사되어 봉토의 구조를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의 묘역 내에 많은 돌방 또는 돌덧널이 배치된 것이 확인되었는데, 돌방 3기, 돌덧널 5기, 화장무덤 1기, 돌널모양유구 1기 등 10기로 이것들은 1호분과 같이 무질서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조사된 돌덧널들은 장축이 짧고 폭이 넓으며 바닥에는 작은 냇돌을 깐 비교적 늦은 시기의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돌방(石室)들은 평면이 정방형, 널길(羨道)은 장벽에 편재한 짧은 형태인데, 상면에는 납작한 냇돌을 깔아 널받침(棺臺)을 만들었으며 천장은 궁륭상(穹窿狀)천장으로 추정되었다. 화장무덤과 돌널모양유구로 분류된 것은 소규모의 방형 돌널모양 유구 내에 토기류를 다량 부장한 것으로 그 위치로 보아 돌방이나 돌덧널의 제사유구일 가능성도 있다. 유물은 대부분 도굴되어 없어지고 짧은굽다리접시, 굽다리바리, 항아리 등의 토기류와 꺾쇠, 관못, 관고리 등의 철기류와 갑옷편이 남아 있을 뿐이다.
7호분은 비교적 대형 봉토분이었으나 다른 것들과 같은 여러덧널무덤이 아니고 지상식 돌방 1기가 봉토의 내부에서 조사되었다. 돌방의 서편에는 내외 2열의 둘레돌(護石) 흔적이 남아 있었다. 봉토의 상부가 많이 삭평되어 내부의 돌방도 하단부만 잔존하고 있었다. 돌방은 장축을 남서-북동 방향으로 한 방형이고 남서단벽에는 남동장벽에 편재한 짧은 널길을 두고 있다. 널길(羨道)은 판석 1매를 세워 막았다.
돌방의 내부에는 바닥 전면에 납작한 냇돌이 깔려 있었고 안쪽에는 장대석을 이용하여 구분한 2-3단의 널받침이 설치되어 있었다. 내부에서 뚜껑돌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큰돌 1매가 발견되었다. 유물은 대부분 도굴되고 굽다리접시 등의 토기류와 관고리, 관못 등만 남아 있었다. 천장은 활천장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외에 2호분에는 하나의 묘역에 5기의 돌덧널이, 6호분에는 2기의 돌덧널이, 8호분에는 3기의 돌덧널이, 9호분에는 5기의 돌덧널과 1기의 돌방이 각각 무질서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토기류는 대가야식의 토기와 신라후기양식의 토기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조사된 고분들의 축조 연대가 대가야의 멸망을 전후한 시기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대략 이른 시기의 돌덧널에서는 대가야식의 토기가, 늦은 시기의 돌덧널과 돌방에서는 신라후기양식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묘제의 교체시기에 대해 시사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조사된 고분들에 한정할 경우 6세기 중엽부터 7세기 전반 사이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완전히 파괴된 4호분과 1호분 봉토층에서는 5세기대의 가야토기가 출토되어 이질적인데, 이것으로 보아 전체 고분군은 이미 5세기나 그 이전부터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고분군을 축조한 집단은 대가야의 지배체제 아래에 있던 지역의 지배집단 이었고 대가야의 멸망 후에도 그 세력이 약화되지 않고 신라의 지역집단으로 잔존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단지 경주지역의 돌방무덤에서 출토되지 않고 백제지역의 돌방무덤에서 많이 출토되는 관고리나 관못 등이 출토되어 백제와의 관련성을 시사하고 있는데, 이것은 비록 신라토기가 출토되는 것이기는 하나 가야말기에 백제의 영향으로 굴식돌방이 등장했을 가능성도 시사한다고 하겠다.
이용안내
쉬는날 = 연중개방
주차시설 = 주차 가능
애완동물가능여부 = 불가
문의및안내 = 055-940-3420
관련 홈페이지 = http://www.geochang.go.kr
상세정보
이용가능시설 = 약수터, 체력단련기구, 자전거도로, 조각공원, 산책로 등
화장실 = 있음,
참조항목
카테고리
출처 ^ 참고문헌,
[거열산성 군림공원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함안 남문외고분군 [咸安南門外古墳群]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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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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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陜川三嘉古墳群(東亞大學校博物館, 1992년)
[삼가 고분 [陜川 三嘉 古墳] (고고학사전,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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