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
농구감독, 전 농구선수/ 출생1965년 9월 28일, 강원도 춘천신체188cm, 80kg소속사스타잇엔터테인먼트가족아들 허웅, 아들 허훈학력중앙대학교 체육교육학 학사데뷔1988년 기아자동차 농구단 입단수상2019년 SBS 연예대상 SBS 챌린저상 (정글의 법칙)
2018
제18회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7
제29회 FIBA 남자농구 아시아컵 국가대표팀 감독
2011.09
제26회 FIBA 아시아 남자농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팀 감독
2009
제1회 동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팀 감독
2005.05 ~ 2015.02
전주 KCC 이지스 감독
2004.07
미국 페퍼다인대학교 농구부 객원코치
2002 ~ 2005
원주 TG 엑서스
1999 ~ 2002
원주 삼보 엑서스
나래 해커스
1998
나래 블루버드
1997.01 ~ 1998.06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1996
제26회 애틀랜타 올림픽 농구 국가대표
1992
제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 농구 국가대표
1988
제24회 서울 올림픽 농구 국가대표
1988
기아자동차 농구단
1986
제10회 서울아시안게임 농구 국가대표
전체 작품활동
이름 |
허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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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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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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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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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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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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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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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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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188.3cm, 87.3kg, BMI 2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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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입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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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
기아자동차 농구단/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1988~19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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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전주 KCC 이지스 감독 (2005~2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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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
올림픽 2회 출전 (1988, 19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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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
<선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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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 |
병역특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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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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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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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前 농구선수 및 농구감독이자 현재는 방송인. 현역 시절 포지션은 포인트 가드 - 슈팅 가드였지만, 국가대표에선 스몰 포워드 - 파워 포워드, 대학 시절에는 센터도 소화했다.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플레이어를 논하는데 있어 가장 먼저 언급된 선수였으며 한국의 마이클 조던 위치에 있었던 선수. 농구대통령이란 별명으로 유명하다.
기록
농구대잔치 시절 성적,
연도 |
팀 |
경기 수 |
총 득점 |
평균 득점 |
총 리바운드 |
평균 리바운드 |
총 어시스트 |
평균 어시스트 |
총 3점슛 |
평균 3점슛 |
18 |
432 |
24.00 |
144 |
8.00 |
112 |
6.22 |
룰 부재 |
룰 부재 |
||
13 |
266 |
20.26 |
85 |
6.53 |
40 |
3.07 |
22 |
1.69 |
||
23 |
555 |
24.13 |
171 |
7.43 |
85 |
3.69 |
91 |
3.95 |
||
중앙대학교 대회 불참 |
||||||||||
20 |
505 |
25.25 |
161 |
8.05 |
58 |
2.90 |
59 |
2.95 |
||
19 |
508 |
26.73 |
127 |
6.68 |
68 |
3.57 |
77 |
4.05 |
||
20 |
508 |
25.40 |
130 |
6.50 |
60 |
3.00 |
69 |
3.45 |
||
21 |
469 |
22.22 |
112 |
5.33 |
71 |
3.38 |
56 |
2.66 |
||
23 |
614 |
26.69 |
165 |
7.17 |
74 |
3.21 |
83 |
3.60 |
||
17 |
510 |
30.00 |
111 |
6.52 |
49 |
2.88 |
76 |
4.47 |
||
20 |
471 |
23.55 |
94 |
4.70 |
62 |
3.10 |
52 |
2.60 |
||
21 |
514 |
24.47 |
128 |
6.09 |
79 |
3.76 |
65 |
3.09 |
KBL 기록
생애
자세한 내용은 허재/생애 문서 를 참고하십시오.
사건사고 및 논란
자세한 내용은 허재/사건사고 및 논란 문서 를 참고하십시오.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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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자체는 비교적 좋은 편이지만 기본적으로는 농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허재는 알 정도의 다혈질이며, 젊었을 때는 음주파동에 자주 휘말리곤 했다. 그러나 예능 출연도 하고 나이와 여러 역경을 겪은 후 크게 성장한 건지 성격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한다. 강한 자존심은 후술. 거기에다가 꼰대끼도 없는 편이라 선수들 사이에서 평도 괜찮고 다가가기도 쉽다고 한다. 팬 서비스 또한 훌륭한데, 만일 당신이 흡연자라면 가볍게 얘기하며 담배를 물거나 조용히 피워보자. 어느새 옆에서 같이 피고 있다고 한다(...). 단 아닐 때도 있다. 참고로 불도 빌려줬다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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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이미수의 말로는 굉장히 낯을 가린다고 한다. 단 친해지면 말도 많이 하는데, 이는 전형적인 낯가리고 친구 많은 사람의 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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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 감독은 평소에 다른 감독들과 달리 자존심이 상당히 강하여 불이익을 볼 때 거침없는 발언을 내뱉는 것으로도 유명했는데, 2011년 농구국가선수권대회 도중 중국 기자가 여러 차례 허재 감독에게 치욕적이고 몰상식한 질문을 던지자 결국 분을 참지 못하고 욕을 하며 기자 회견장을 나갔다.
중국 기자 : "왜 한국 선수들은 중국 국가가 나오는데 국기를 향해 서지 않았습니까?"
마지막에 허재 감독이 퇴장하자마자 중국 기자들이 허재 감독에게 야유를 한다.
허재 : 뭔 소리야?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그래 18 진짜 짜증 나게!
통역사 : He said no comment(대답하지 않겠습니다)
허재 : "말 같지도 않은(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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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 부친상을 당했을 때 그야말로 미친 듯이 울었다고 한다. 선수 시절의 일화와 후술할 강동희 썰까지 합쳤을 때 의외로 마음이 약한 성격으로, 내유외강라고도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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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선수 시절 상대 팀들이 허재를 막기 위해 폭력을 불사하는 거친 수비를 한 일이 많고 그 때문에 코트 위 폭력사건에 휘말린 일이 많다. 한데 때린 일은 거의 없고 맞기만 많이 맞은 편. 다혈질로 정평이 나있지만 마음은 약한지 정작 남을 때리지 못하는 성격인 듯 하다. 결정적으로 허재는 타팀에게 도발하거나 어그로를 끄는 발언을 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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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유의 솔직한 성격으로 할 말을 다 해야지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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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도 적혀 있지만 엘리트 밟아왔고 불같은 성격이지만 의외로 꼰대끼가 없다. 어느 정도냐면, 서장훈이 한때 본인의 팀 감독이었던 허재를 감독님 또는 선배가 아닌 그냥 '형'이라고 부른다. 선후배 간 경직도가 심한 예체능에서, 그것도 자신의 소속팀 감독이었던 선배에게 그냥 형이라고 부르는 건 정말 특이한 케이스다. 하승진은 사회에서 만났지만 인생의 은사라고 표현할 정도로 멋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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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출이라지만 기본적으로 농구에 대한 애착이 강하며 지속적으로 농구 관련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걸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활동 내역
TV
출연 날짜 |
방송사 |
방송명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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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는 내 친구 코너를 진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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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 스포츠 |
제트 스키 시범과 신혼생활을 공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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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배달부로 일하는 내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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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간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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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에서 최인선 전 기아 감독과 함께 카메오로 출연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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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왕 공룡탐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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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음악 사이 |
부인 이미수 씨와 함께 출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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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병진 나이트쇼 |
농구대잔치 5천점 돌파와 대만 진출 거부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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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세쇼 |
가수 민치영과 함께 출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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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삶의 현장 |
부산의 순대공장에서 일하는 내용으로 일당 7만원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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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명초 시절 짝꿍이었던 최윤정을 찾은 내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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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다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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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으로 첫 출연한 프로그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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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감독 사퇴 후 첫 예능 출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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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한상진과 함께 출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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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FC의 맴버인 이만기와 같이 출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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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MC로 출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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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쳐야 찬다에 김용만, 정형돈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인 만큼 출연요청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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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기 선발대로 출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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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석진과 함께 게스트 출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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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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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 출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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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의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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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나가쇼 |
2월 4일까지 고정 출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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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챌린저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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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건너 사랑 |
굿네이버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니제르로 자원봉사를 갔으며 이 에피소드의 나레이션도 맡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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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로 고정 출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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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곤, 지상렬, 김준현, 박진철 프로, 이경규, 이덕화,와 함께 출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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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하는 날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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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농구선수이자 유투버인 하승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
라디오
출연 날짜 |
방송사 |
방송명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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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백천의 뮤직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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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 매거진 |
광고
광고주 |
제품 |
비고 |
나래이동통신 |
나래시큐리티 |
다만 허재의 목소리는 나레이션과 똑같이 후시녹음으로 더빙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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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코니창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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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스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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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첸 |
2006년은 양 편과 곰 편, 2008년은 오디션 편과 하이디 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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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존중 시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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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삼다수 |
삼다스톤의 비밀을 풀기 위한 광고로 실제로 제주도에서 촬영했다. |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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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분야에서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이는 사람에게 붙이는 '~~대통령' 수식어의 원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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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출범 이후 선수로서도 감독으로서도 우승을 맛본 최초의 인물이다. 선수, 코치, 감독으로 우승한 최초의 인물은김승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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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허동택 트리오'를 이루었던 강동희, 김유택과는 은퇴 후로도 자주 교류하였다. 특히 강동희와 농구를 넘어선 인간관계 교류가 짙었다. 10-11시즌 챔피언 결정전을 앞두고 서로 의가 상하지 않게 판정에 대한 항의를 하지 말자고 다짐을 했을 정도. 하지만, 강동희는 이후 친구의 뒷통수를 거하게 때린다. 그럴 애가 아니라는 말이 무안해질 정도로. 당시 허재는 큰 충격으로 하루에 담배 4갑을 피웠고 눈물을 흘리며 폭주를 했다고 한다. 이후 한동안 제정신을 못 찾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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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서울 올림픽 때 남자 선수 대표로 페어플레이 선서를 했던 사람이 바로 사진 오른쪽에 있는 허재였고 왼쪽은 당시 여자 핸드볼 선수였던 손미나였다.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개회식 방송을 못 본 90년대 이후에 출생한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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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올림픽 국가대표 시절 당시에 올린 기록은 상당했으며, 특히 유고슬라비아와의 경기가 인상적이었다. 블라디 디박, 디노 라자, 토니 쿠코치, 드라젠 페트로비치 같은 불세출의 NBA 리거들을 앞에 두고 1, 2번을 넘나드는 활약을 펼쳤다. 한국농구에서 두 번 다시 나오기 힘든 재능이었고, 당시에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지닌, 신동파와 이충희 계보를 잇는 한 마디로 올 어라운드 플레이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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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 위 폭력 사건으로는 맞은 일이 많지만 허재의 성격이 좋은 말로 화끈하고 나쁜 말로 욱하는 성격이란 말은 나름 유명한 편. 선배라 해서 가리지 않고 성질을 내며 들이댄 일도 많고, 심판에게 거칠게 항의한 일도 많다. 요즘 시대로 치면 딱 축구 기성용이 저런 스타일. 그래도 결혼 후 아내까지 부끄러워지니 성질을 죽이기 시작했다고 방송에서 말한 일이 있고, 감독이 된 이후로는 성질을 정말 많이 죽였다고 스스로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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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뿐만 아니라 술 또한 농구계의 전설이지만, 야구에도 실력 뿐 아니라 술로서도 전설인 선동열과 친분이 있었다. 당연히 둘이 대작을 했는데, 허재의 패배. 그 술이라면 절대 지지 않을 것 같았던 허재가 화장실 간다고 해놓고 도망친 것이다. 허재는 이때 일을 회상하며 난생 처음 '술먹고 죽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또 한 번은 두 사람이 술을 진탕 마시고 선동열 집에서 잠들었는데 숙취 때문에 오후가 되어서야 일어나서 TV를 켰더니 선동열이 마운드에서 던지고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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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 전 고대 감독과도 일본에서 술내기를 했다가 진짜로 죽을 뻔했다고. 주신은 따로 있었다나. 오랫동안 허재와 선동열이 광주에 허재가 오면 둘이 밤새도록 술을 퍼마신 후 다음 날 허재가 30득점을 해서 스스로 흡족하게 여기는데 선동열이 완봉을 하자 허재가 혀를 내둘렀다는 이야기가 사실처럼 돌았는데 허재 본인이 직접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서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를 거짓말이라고 일축했다. 또한, 영화배우 박중훈과는 동갑내기에 용산고 - 중앙대 동문인지라 주당으로 유명한 두 사람과의 일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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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말고도 허재가 좋아하는 음식이 바로 생사탕이다. 캔디(砂糖)가 아니다.뱀(蛇湯)이다. 허재의 아버지인 허준 옹은 허재를 최고의 농구선수로 키우기 위해 아들 뒷바라지를 열심히 했는데, 스태미너를 키우기 위한 보양식으로 1년에 한 번은 뱀을 고아서 먹였다고 한다.(...) 뭉쳐야 찬다에서 최고의 보양식으로 칠점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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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이미수 씨와의 인연도 재미있는데, 부산의 상류층 규수였던 이미수 씨는 다른 남자와 맞선을 보려고(...) 어머니와 호텔에 갔다가 우연히 허재와 처음 만났다고 한다. 허재는 그녀를 처음 보자마자 반해서 먼저 대시해서 매일같이 연락을 하곤 했는데, 정작 그녀는 스포츠에 관심이 없어서 허재가 그렇게 유명인인줄도 몰랐다고 한다.(...) 게다가 둘이 결혼하기로 했을 때는 이미수 씨의 집안에서 반대가 심했다. 그녀의 형부들은 허재의 다혈질에 대한 악명(?)을 잘 알고 있었던데다가 오빠는 하필이면 허재의 농구 경쟁팀이었던 고려대학교 출신이었던 것도 한몫했던 듯 하다. 하지만 이미수 씨의 어머니는 정작 허재를 직접 만나보고는 "남자다워서 마음에 든다!"라고 결혼을 허락했다. 누가 허재의 아내 아니랄까봐 내공이 보통이 아닌 듯한데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슛 타이밍 때, 못 올라가고 하면 화가 많이 난다. 남편은 워낙 잘했기 때문에 그럴 일이 없었지만 애들 경기를 보면 화가 날 때가 많았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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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들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모두 농구 선수이다. 축구계에 차범근 차두리가 있다면 농구계엔 이들이 있다. 왼쪽이 허웅, 오른쪽이 허훈. 허웅은 슈팅가드로 아버지가 나온 용산고등학교를 거쳐 아버지의 모교로 가리라는 예상을 뒤엎고 연세대에 진학했고, 두 살 아래인 허훈 또한 형과 똑같이 용산고를 거쳐서 연세대에 진학하게 됐다. 둘 다 가드인데 아마시절 커리어는 형인 허웅보다 동생인 허훈이 더 커리어가 뛰어나며, 객관적인 평가에서 허훈이 앞선다는 평을 받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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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웅이 2014년 신인드래프트 대상자가 되면서 과연 KCC에 갈 수 있을지 주목을 모았는데, 이에 대해 허재는 "마침 우리 팀에 웅이 자리가 딱 비어있긴 하다. 한 4순위 정도로 뽑히지 않을까 보고 있다."는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허재는 4픽을 뽑았다(...) 그러나 허웅이 아닌 고려대 김지후를 지명했다. 대신 허웅은 아버지의 흔적이 남아있는 팀에 지명 되며 내년 시즌 부자대결을 기대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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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은 이제 누구를 응원할지 고민했겠지만 허재가 백수가 되면서 마음 편히 아들 응원하는 듯. 한국 농구 역사상 명선수 출신에 감독의 두 자식들이 모두 아버지에 뒤를 이어 프로선수가 된 몇 안되는 케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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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21일에는 부산에서 열린 허훈의 부산 kt 소닉붐과 허웅의 원주 DB 프로미 경기에서 시투를 하였다. 그렇지만 허웅의 허리 부상으로 엔트리에 들지 않아 부산 원정에 나서지 않았다. kt의 승리를 위해 시투한 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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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에 방영된 개그콘서트의 코너 호구와 울봉이에서 개그맨 박성호가 들장미 소녀 캔디의 노래 가사에 관한 문제를 냈는데, 연관성과 전혀 없는데도 김준호가 답한 인물이 허재였다. 원래 정답은 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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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군인 출신이시라고 한다. 이 아버지와 관련해서 이야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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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 게임 은메달 2개가 많이 아쉬운 듯 보인다. 그럴만도 한 것이 충분히 금메달을 딸 수 있었음에도 안타깝게 못 딴 경우들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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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선수 이종범과는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아들들이 훌륭한 선수로 자랐다는 점과 더불어 친구 같은 아버지라는 점이다. 보통 허재 선수의 다혈질적인 모습과 이종범 선수의 카리스마를 생각하면 엄한 아버지였을 것 같지만, 실제로 허재는 매는커녕 따끔한 훈육도 못 하는 성격이라고 한다. 실제로 무서운 사람은 어머니였다고... 이는 이종범 역시 마찬가지로, 큰맘 먹고 매를 들려고 했을 때, 아들 왈 "아버지한테는 도저히 못맞겠다."라는 배짱을 시전, 결국엔 때리지 못했다는 일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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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8일, 한국소비자포럼이 주최한 2020 브랜드 고객충성도 대상에서 스포테이너 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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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남 허훈이 2019-20 시즌 한국프로농구 MVP를 수상하였다. 이는 자신과 장남도 못해본 정규시즌 MVP인데, 허재는 KBL 플레이오프 MVP는 타본적이 있지만 정규시즌 MVP는 타본적이 없고 허웅은 둘다 아직 수상해본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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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계 은퇴 이후 예능프로그램에 간간이 출연했는데, 농구 만큼이나 좋아하는 것이 낚시라고 한다. 도시어부 게스트로써 볼락을 잡으며 '이게 볼락이야!' 드립을 치더니, 이후에 무서운 집중력으로 낚시에 대한 승부욕이 대단하다. 이경규가 예능식으로 고기 안 잡힌다고 분노하는 것과 달리 이 쪽은 정말 안잡혀서 분노를 퍼붓는 스타일. 이전부터 허재가 낚시를 즐긴다는 뉴스는 많이 나왔는데, 99년 신문 기사를 보면 허재 본인을 포함해 유재학, 신선우, 이훈재 등이 낚시터를 자주 찾는 농구인들로 유명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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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가 될 뻔한 사연도 있었는데 대학교 4학년 때 11월 말에 개최된 방콕 아시아 남자농구선수권 대회가 끝난 직후 곡 작업에 들어가 늦어도 연말까지는 앨범을 발표할 계획이었지만 아쉽게도 입단이 확정된 기아자동차 구단의 반발로 성사되지 못했다.
관련 문서
고려 문신인 허재와 한자가 동일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농구부에 들어왔지만 불과 1년만에 해체되는 바람에 상명초로 전학을 갔다. 원래 연극영화과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문전박대를 당하고(...) 체육교육과에 들어갔다고 한다. 선수 은퇴 후 미국에서 지도자 연수 중 교회를 다녔다고 밝혔으며, 이후에는 불교로 개종해 2019년 중앙신도회 부설 법인 사단법인 날마다좋은날 행복바라미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불자 대상을 수상하였다. 참고로 아내 이미수 씨도 불교 신자이다. 1~5번 포지션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다.
뭉쳐야 찬다 건강검진에서 밝혔다. 총 15년간 국가대표로 거의 매년 활약하다가 중간중간 빠진 연도가 있는데, 1993년 자카르타 아시아선수권 때는 음주운전으로 인한 자격정지(;;), 1997~98년 대회들 역시 유명한 "애틀란타 올림픽 음주파동"으로 인한 자격정지로 빠졌다.
허재의 국가대표팀 첫 선발은 중앙대 1학년이던 1984년 타이완 존스컵(지금까지도 매년 열리고 있는 그 대회) 대표팀이었다. 본 항목에는 메이저 대회 경력만 기술하므로 1985년 콸라룸푸르 아시아선수권가 첫 머리에 올랐다. 34세이던 1999 후쿠오카 아시아선수권 결승에서 중국에 패하며 2000 시드니 올림픽 출전권을 놓쳤고, 강동희와 함께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이로 병역특례를 받아 성인이 되기 전에 병역문제부터 해결했다. 그 당시라 선수권대회로 특례를 받은 거지 현재는 선수권대회나 연령별 대회 우승은 특례대상이 아니다.
중앙대 2학년 때부터 KBL 출범직전인 1996-97 농구대잔치까지 거의 빠짐없이 베스트 5에 선정되었다고 보면 된다. 중간중간 베스트 5에 누락된 사유도 다양한데, 허재가 4학년이던 1987-88 농구대잔치에는 중앙대가 아예 불참했고 1990-91 농구대잔치에서는 결승 2차전에서의 허재 vs.임달식/김성욱 간 폭력사태로 인해 베스트 5는 물론 MVP마저 날아갔었다.
KBL 출범전 마지막 농구대잔치인 1996-97 농구대잔치 때는 바로 직전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음주파동으로 인한 징계로 출전을 못했다. 참 파란만장했다;; 역대 유일 준우승팀 MVP. 공교롭게도 허재가 출전한 모든 ABC 대회에서 준우승했다. 징계로 각각 참가하지 못한 1993 자카르타 ABC에서는 대표팀이 3위,1997 ABC에서는 우승(;;)을 차지했다. 6번의 준우승 중 5번의 결승상대가 중국이었다. (1985 대회만 필리핀) 상무에 기록이 없고 현역이든 어디든 입대했다는 말이 없어 뭘로 병역을 해결했는지 확실하지 않았으나, 1984년에 열린 아시아 청소년 대회 우승으로 병역특례를 받았다고 뭉찬에서 밝혔다. 여담으로 훈련소는 6주 갔다왔다고 한다.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농구 모르는 사람들은 욱허재라고 많이 불렀다고. 사실 농구에 있어서 굉장히 불같고 승부욕이 세서 그렇지 꽤 시원시원한 성격이고, 뒤끝이 없는 스타일이다. 그리고 툴툴거리면서도 은근 챙겨주는 면도 있다. 딱, 이경규나 박명수의 거친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부친상, 강동희 감독의 제명 등등 뭉찬에서 꼰대 이미지는 컨셉상 이만기가 다 가져가고 있다곤 하지만 거기에서도 허재의 역할은 생떼 혹은 휘둘리기다. 야구나 농구는 흡연자들이 많아 팬 서비스로 맞담을 하는 선수나 감독들도 많다. 물론 선수 생명에 있어서 좋은 영향을 주진 않으니 근래에는 선수들의 금연을 적극 권장하는 추세이긴 하다. 단 축구는 아무래도 맞담 팬서비스를 기대하긴 힘들다그런데 유명 축구선수들 중에서도 담배를즐긴 선수들이있긴있었다.
사실 운동선수라서 자기 분야 선수들과는 친하지만 타분야에 있어서는 아무래도 문외한이다 보니 그런 측면이 많다. 서장훈은 이와 반대로 인맥이 넓다. 석주일도 그렇고. 참고로 이 때 중국 기자들이 허재 감독에게 던진 질문은 경기 전 중국 국가가 나올 때 한국 선수들은 왜 중국 국기를 향해 서지 않았나 같은 희대의 개소리들이었다.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중국의 기자들이 K리그의 감독들에게 이런 식의 개드립같은 질문 공세가 심해지자 이 발언이 다시 재조명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스포츠 외적으로도 개소리를 뱉어내는 사람들이 생기면 "허재 감독 데리고 와라!"며 유행어처럼 자리 잡게 되었다.
실제로 중국기자의 질문은 정확하게는 "스포츠 경기 전 모든 선수들은 상대방 국가가 나올 때에도 엄숙함을 유지하고 있어주는게 예의고 국제관례라고 알고 있는데 중국 국가가 나올 때 대한민국 선수들은 어떻게 하고 있었나요"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중국 국기'를 향해 서지않았나" 라는 질문은 한 적이 없다. 동영상 편집자가 의도적이었는지 단순히 중국어를 잘 모르고 실수를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오역인 것은 확실하다. 이 오역에 대해 허재 감독의 통역가 또한 마찬가지로 보이며 허재 감독의 태도에 중국 기자들의 야유 또한 통역의 부재로 인한 오해로 보는 것이 맞다.
챔피언 결정전 도중 갈비뼈 골절상을 당하고도 끝까지 뛰어 결국 끝나고 나서 통증과 기쁨을 못 이겨 엉엉 울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눈물을 흘렸다는 에피소드가 은근히 존재한다. 허재, 전창진은 유독 작전타임에서의 불같은 성격이 나온다. 그 유명한 불낙이 대표적. 극중 최종원이 운영하는 카페에 단골 손님인 프로 농구단 단장이 찾아와서 준 프로 농구 경기 표를 얻고 친구들과 농구장(당시 촬영장소는 원주 삼보 엑서스의 옛 홈구장이었던 치악체육관. 경기 영상은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진행된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에 갔는데 극 중 술버릇이 나쁜 윤다훈은 어떤 남성이 건네받은 술을 먹고 난동을 부리며 관중석으로 온 공을 돌려주지 않으려고 하자 이 때 내뱉은 명대사가 "허재 선수가 나보고 농구 허재"였다. 거기에서는 안정환과는 비교도 안되는 화려한 경력으로 감독 직업병과 특유의 생떼, 또한 이미지와 달리 이리저리 휘둘리는 모습으로 사랑 받고 있다.
방송을 보면 훈련 안하려고 온갖 핑계를 대지만, 나름 노력하는 모습도 많고, 정작 감독 말은 제일 잘 듣는다. 대표적으로 욕하지 말라니까 진짜 욕을 안 하고 재활 치료 도중에 술자리 제안을 여러 차례 거부한 것. 투덜투덜 거리면서도 정작 훈련 이해도는 가장 높아서 가장 바르게 훈련을 소화해낸다.사실 농구와 축구는 다른 점이 많지만 기본적으로 전술은 비슷하기에 훈련 이해도는 높을 수밖에 없다. 다만 농구 후배이자 프로팀 제자이기도 한 서장훈의 인지도 굴욕에 밀렸다. 지석진과는 초면인데도 의외로 잘 맞는 구석이 있었다. 함께 합류한 소유진과는 달리, 집을 새롭게 공사하다 보니 집이 완성되는 동안에 은지원&김종민의 집이나 조병규의 집에서 머물었으나, 21화 시점부터 본인의 집이 생겼다. 정규편성이 아닌 2부작 파일럿으로 편성했다. 첫 생방송이라 긴장된 모습이었는지 잦은 사고도 있었지만 김민아 기상캐스터가 가르쳐 준대로 열심히 연습한 덕분에 무사히 진행을 마칠 수 있었다.
2019년 12월 24일 막나가쇼에도 방송되었다. 97 원년 기아, 02~03 TG, 08~09/10~11 KCC 선술되어있듯 허재는 코치를 거치지 않았다(...). 물론, 선수시설 준코치 정도의 위상은 가지고 있었지만. 다만 아는형님에 출연해서 밝히는 바로는 감독시절에 팀이 잘하면 자신도 웃고 박수도 치고 작전타임에도 잘 달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건 카메라에 한번도 안나오고 매번 화나는 장면만 나와서 화만 내는 사람으로 각인되는게 억울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광주광역시 바닥에서 선동열이 술로 제대로 한가닥 했는지라, 어느 정도냐면 허재랑 술을 4차째 마시고 문을 연 술집이 없자, 한 술집 셔터를 두들기며 "나 선동열이오."하니 주인이 환영을 하며 셔터를 다시 올렸다고 한다. 당연히 거짓말일 수밖에 없는 것이 농구대잔치는 겨울에 한다(...) 프로농구 출범 이후엔 야구시즌과 농구시즌이 겹칠 수도 있지만 선동열은 KBL 출범 이전인 1996년에 일본으로 진출했다.
선동열의 고려대학교 동기인 정삼흠이 선발맞대결 전날 술을 퍼마시다가 정삼흠은 7이닝 5실점했는데 선동열은 완봉승을 거둔 일화가 와전되어 알려졌을 가능성이 높다. 단, 박중훈은 재수하여 입학하였으므로 대학교 기준으로는 허재가 박중훈의 1년 선배이다. 물리면 일곱 걸음안에 죽는다는 독사라 칠점사라는 별명이 붙었다. 물론 요즘은 못 먹는다고. 닭 또한 1일 보약이라며 당시 백숙이 나왔을 때 정말 좋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허재의 두 아들들은 후에 연세대학교에 진학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특히 국가대표에서 허훈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반면 허웅은 그래도 동생보다는 조금 더 많은걸 보여줘서 평가가 뒤집히고 있다. 허훈은 이미 소년체전 때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을정도로 많은 주목을 받았었고. 물론 허웅도 허훈만큼은 아니더라도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어서 연세대에서 팀의 득점원으로 활약, 빠른 성장세를 보이면서 기대를 모으고 있었지만 허웅은 본격적인 농구를 조금 늦게 시작한 탓에 두각을 나타낸 것은 허훈에 비해선 조금 늦은 나이였던 편이다. 임종도 못 지켰다고 한다.자식이 부모 임종을 못 지키는건 최악의 불효 중 하나라 죄스러운 마음까지 섞여 미친듯이 울었다고. 연금점수는 아시안 게임 은 2개로 4점, 동 1개 1점으로 총 5점인데 연금 수령조건인 20점에 미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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