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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마 빈 라덴 [ Osama bin Laden ],,,,!?

"오사마 빈 라덴 [ Osama bin Laden ],,,,!?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국제 테러리스트. 이집트 과격단체들과 동맹을 맺고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자신이 조직한 테러 조직 알카에다를 통해 국제적인 테러를 지원하기 시작하여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와 9·11 미국대폭발테러 등의 배후자로 지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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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마 빈 라덴

출생-사망/ 별칭/ 국적/ 활동분야,

1957.3.10 ~ 2011.5.2
오사마 모하마드 빈 라덴
사우디아라비아
테러리즘

1957년 사우디아라비아 남서부의 제다에서 명문가의 아들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아버지는 예멘에서 사우디아라비아로 이주해 사우디아라비아 최대의 건설회사를 세워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까지 킹압둘아지즈대학교에서 이슬람교 스승들의 영향을 받아 정치와 종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급진 이슬람원리주의자로서, 1980년대 중반에는 소련 아프가니스탄 침공 직후 아프가니스탄으로 건너가 아랍 의용군을 조직하고, 도로 건설 및 난민 구호, 병참 업무 등을 담당하면서 소련(러시아)군에 맞섰다.

이후 점차 전투로 전향해 1986년부터 실전에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명성을 얻었으나, 1989년 잘랄라바드에서 파키스탄의 지지를 등에 업고 친소련 정부와 맞서다가 큰 희생을 치르고 자신도 부상을 당하였다.

1989년 사우디아라비아로 귀국해 아프가니스탄 참전용사를 위해 복지기구를 건립하고, 1990년 이라크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사우디아라비아의 방어를 자청하였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 왕가가 이교도 미국인들에게 방어를 맡기자 이에 반대하다가 제다에 연금되었고, 1992년 자신의 추종자들과 함께 수단의 수도 카르툼으로 건너갔다.

이때부터 반미() 인사가 되어 이집트 과격단체들과 동맹을 맺고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자신이 조직한 테러 조직 알 카에다(Al-Qaeda)를 통해 국제적인 테러를 지원하기 시작하였다.

1993년 발생한 소말리아인()들의 미국 평화유지군 살해사건에 빈 라덴의 부하 일부가 가담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1996년 미국 국무부의 '주요 테러 재정지원자'로 지목되었고, 같은 해 수단에서 축출되자 다시 아프가니스탄으로 건너갔다.

이곳에서 그는 '미국인과 유대인을 적대시하라'는 교시를 내리고 성전()을 선언한 뒤, 지하드 등 다양한 회교 테러 조직들과 함께 전세계 미국 시설들에 대한 공격을 촉구하였다.

1998년 8월 224명이 사망한 케냐 탄자니아의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의 배후로 지목되었고, 미국 정부는 그에게 500만 달러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빈 라덴은 아프가니스탄에 머물면서 자신이 이끄는 알 카에다를 중심으로 전세계 이슬람 테러 조직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이에 따라 미국은 1998년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빈 라덴의 기지와 수단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화학무기 공장에 미사일 공격을 명령하기도 하였다.

1999년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 숨어 지내면서 계속 대미 테러 활동을 벌여왔는데, 2001년 9월 11일 발생한 미국 맨해튼의 110층짜리 쌍둥이 빌딩인 세계무역센터와 미국 국방부(펜타곤)에 대한 항공기 납치 자살테러사건 역시 그가 조종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2001년 10월 말 미국은 그가 숨어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전면전 공격과 국제 테러 조직들에 대해 무차별 응징을 선언했다.

수 년간 은신생활을 해온 오사마 빈 라덴은 2011년 5월 파키스탄의 수도인 이슬라마바드 외곽에 있는 한 가옥에서 미군 특수부대의 공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알카에다’ 두목 빈라덴, 자녀에 남긴 유언장엔 “알카에다 합류 말라”

은신처에서 천연 최음제 쓰며 세 아내 만족 시킨 듯,
NYT, 아내를 ‘인간방패’ 삼은 빈라덴을 ‘헌신적 패밀리맨’으로 묘사해 여론 뭇매 맞아,

전세계를 테러로 몰았던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집단 ‘알 카에다’의 지도자였던 오사마 빈라덴은 생전에 아이들에게 “알 카에다에 합류하지 말라”는 유언장을 남겼다고, 뉴욕타임스(NYT)가 5일 보도했다.

NYT는 9‧11테러 20주년을 앞두고, 미 언론인 피터 버겐이 쓴 책인 ‘오사마 빈라덴의 성쇠(The Rise and Fall of Usama bin Laden)’를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버겐은 30여년간 빈라덴을 추적한 언론인으로, 2011년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이 파키스탄의 은신처를 급습해 빈라덴을 사살하면서 획득한 4만700여 건의 자료를 토대로 이 책을 썼다.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집단 ‘알 카에다’의 지도자였던 오사마 빈라덴,

5명의 아내에게서 24명의 자녀 둬,

버겐의 책에 따르면, 빈라덴은 2001년 미군 공습을 피해 아프가니스탄의 은신처였던 토라 보라를 떠나면서 쓴 유언장에서 아내들에게는 자신을 지지해준 것에 감사하고,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에 대한 용서를 구했다.

아이들에게는 “너희들은 알 카에다와 일하지 말라”고 썼다.     

하지만, 빈라덴의 아들 중 한 명인 함자(Hamza)는 알 카에다에서 주요 활동을 했고, 결국 2019년 7월 미군에 살해됐다.

9월 트럼프 행정부는 뒤늦게 “미국의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대테러 작전에서 함자를 죽였다”고 발표했다.

2017~2019년 중에, 미군의 대테러작전에서 살해된 빈라덴의 아들 함자. 

2017~2019년 중에, 미군의 대테러작전에서 살해된 빈라덴의 아들 함자.

당시 그는 알카에다의 주요 인물로 떠오르고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9년 9월 뒤늦게 그의 죽음을 확인했다.

빈라덴은 모두 5명의 아내를 뒀다.

그러나 한 명은 이혼했고, 또 한 명은 일찍 그를 떠났다.

네이비실이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의 은신처를 급습했을 때 함께 있었던 빈라덴 아내 3명의 나이는 28~62세였고, 아이들은 3세부터 35세까지 있었다.

빈라덴은 이곳에서 아이와 손자 12명과 함께 살았다.

 

”천연 최음제 쓰며, 세 아내 만족시켜”

예멘의 부호였던 빈라덴의 아버지는 10대 초반이던 빈라덴을, 여느 부잣집 아이처럼 옥스퍼드대 서머스쿨로 보냈다. 빈라덴은 거기서 스페인 여학생 2명과 사귀었지만, 영국이 “도덕적으로 타락했다”고 느꼈다.

16세에는 이슬람 근본주의에 심취했고, 이듬해 15세짜리 사촌과 첫결혼을 했다.

빈라덴의 여성관(女性觀)은 모순투성이였다.

딸이 세 살만 넘으면 남자와 한 방에 있지도 못하게 했지만, 두 아내는 코란 문법과 아동심리학에서 박사 학위 소지자였다.

두 아내는 빈라덴의 성명서 작성과 전략 수립을 함께 논의했다.

그런가 하면, 2000년 결혼한 다섯 번째 아내는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16세였는데, 다른 아내들에게는 “고학력의 30세”라고 속였다.

빈라덴이 이 여성과 결혼한 이유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쫓겨날 경우, 예멘 정부로부터 은신처를 제공받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버겐은 “빈라덴이 천연 최음제를 써서, 세 아내를 만족시켰다”고 했다.

빈라덴은 아들들에겐 냉장고나 에어콘도 없이 거친 환경에서 살아남도록 강하게 교육시켰다.

결국 장남은 빈라덴을 떠났고,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다시 보지 못했다.

 

NYT, 서평 제목에 “헌신적 패밀리맨”이라고 썼다가 뭇매 맞아,

한편, NYT는 서평 기사의 제목을 애초에 “광적인 테러범이자, 가정에는 헌신적이었던 남자(a devoted family man)”이라고 썼다가, 테러범을 미화하느냐는 거센 비판을 받고, 그렇게 쓸 수 있냐는 미국내 거센 반발을 받고, 이 문구를 뺐다.

2011년 빈 라덴을 직접 사살했던 네이비실 요원 로버트 오닐은 트위터에서 “패밀리 맨이라니. 자기 아내를 인간 방패로 썼다.

빈라덴이 아내보다 키가 커서, 나한테는 (맞추기) 좋았지”라고 비꼬았다.

육군 출신의 웨슬리 헌트는 “‘기록의 신문’이라는 뉴욕타임스가 뉴욕시민 수천 명을 죽인 괴물을 ‘헌신적인 패밀리 맨’이라고 하다니…

그토록 많은 미국인들이 미국 언론에 환멸을 느낄만도 하다”고 트윗했다.

미디어 리서치 센터의 케빈 토버는 “NYT는 대규모 살인을 자행한 테러범보다 미국에 더 비판적”이라고 비꼬았다.

한편, 워싱턴포스트도 지난 2019년 10월 테러집단 이슬람국가(IS)의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미 육군의 델타포스의 공격을 받고 자폭(自爆)하자, 그가 이슬람 신학에 정통한 철학 박사인 점을 들어 “금욕적인(austere) 이슬람 학자”로 묘사했다가 거센 비판을 받았다.

결국 나중에 “IS의 극단적 지도자(extremist leader)”로 표현을 바꿨다.

 

빈라덴 아들도 사망…!? 미국의 집요한 응징,

NYT "美, 작전에 중요 역할"

9·11 테러를 주도한 오사마 빈라덴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함자 빈라덴(30·사진)이 미국이 주도한 공격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함자는 2011년 오사마가 사망한 이후, 국제 테러 조직 '알카에다'를 이끌어온 것으로 추정된 인물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익명의 백악관 관리 2명을 인용해 함자가 살해됐고, 그 작전에 미국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9·11 테러를 주도한 오사마 빈라덴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함자 빈라덴(30· 사진 )

함자가 정확히 어디서 어떻게 사망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백악관 관리는 NYT에 "(사망 시점은)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된 2017년 1월 이후"라고 밝혔다.

함자는 지난 2월 미 국무부가 그의 소재(所在)를 알려주는 사람에게 100만달러의 현상금을 내걸었을 때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당시 미군과 정보기관은 그의 사망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함자는 오사마 빈라덴 20명 자녀 중 열다섯째로, 세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를 이어 알카에다를 이끌 후계자로 꼽혀 왔다.

2015년 알카에다는 정기 간행물에서 그를 "대의(大義)를 이끌어 갈 어린 사자"라고 표현했고, 2017년에는 "알카에다는 무슬림을 핍박하는 미국을 겨냥한 지하드, 이슬람 성전을 계속 수행할 것"이라는 함자의 음성 메시지가 공개되기도 했다.

알카에다에 대한 미국의 복수는 집요하다.

CIA와 미군 등은 2009년 파키스탄에 숨어 있던 오사마의 또 다른 아들인 사드 빈라덴을 드론 공격으로 살해했다.

2011년에는 파키스탄에서 또 다른 아들 칼리드 빈라덴과 오사마를 살해했다.

현재도 CIA는 알카에다의 핵심 인물인 아이만 알 자와히리를 추적하고 있다.

 

참조항목

지하드, 테러리즘, 모자헤딘할크, 이슬람원리주의, 미국대폭발테러사건, 무하마드 오마르, 알 카에다, 미국아프가니스탄공격, 북부동맹, 예멘 미구축함폭발사건

 

역참조항목

아프가니스탄, 아프가니스탄의 정치, 무자헤딘, 와하비즘, 제마 이슬라미야, 인도네시아 발리 나이트클럽폭발사건

 

카테고리

역사 > 아시아사 > 서남아시아사 > 현대

인물 > 정치 > 기타아시아정치

지역 > 아시아 > 사우디아라비아

 

출처 ^ 참고문험,

[네이버 지식백과] 오사마 빈 라덴 [Osama bin Laden] (두산백과)

 

참조항목

지하드, 테러리즘, 모자헤딘할크, 이슬람원리주의, 미국대폭발테러사건, 무하마드 오마르, 알 카에다, 미국아프가니스탄공격, 북부동맹, 예멘 미구축함폭발사건

 

역참조항목

아프가니스탄, 아프가니스탄의 정치, 무자헤딘, 와하비즘, 제마 이슬라미야, 인도네시아 발리 나이트클럽폭발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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